숨이 트이던 날

다시 숨구멍을 찾기까지

by 서해
“자기 자신과 분리된 인간은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이 반복될 때 무기력이 된다.”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마흔이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나는 내 얼굴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거울 속 내가 낯설었다.

표정은 굳었고, 눈빛은 희미했다.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 방향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느낌이었다.


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사소한 일에도 웃고 우는 표정.

내게도 분명 있었던 것들인데,

어느새 전생의 기억처럼 멀다.


큰 불행도 급격한 변화도 없었다.

그런데 기운이 없었다.

뭐라도 일어났다면 달랐을까.

아무 일도 없는 날의 고마움을 내가 잊은 건 아닐까.


회사에서는 조직개편이 반복됐다.

명분은 있었지만, 그 안에 ‘나’는 없었다.

주체성을 잃은 변화 속에서

점점 구색 맞추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생각 대신 움직임이 필요했다.

그날, 무심코 바다로 차를 몰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살기 위해 숲으로 갔다.
삶의 본질만을 마주하고 싶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인천대교 위에 노을빛이 번졌다.

바람이 차창 틈으로 스며들었고,

멀리서 파도는 빛을 머금은 채 잔잔히 출렁였다.

그 순간, 내 안의 목소리가 말했다.

‘나도 여기에 있고 싶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 위엔

수없이 많은 숨구멍이 있었다.

소라게가 오가고,

조개는 땅속에서 가느다란 물줄기를 내뿜었다.


겉으로는 텅 비어 보이지만

그 아래 숨 쉬는 작은 생명들.

그 풍경이 내 마음을 닮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모래 위를 스치는 바람,

물결 따라 번지는 햇살,

갯벌을 파고드는 생명들의 기척까지—

모든 것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가 찾고 있던 건,

살아 숨 쉬는 자신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조용히 나를 깨웠다.

회복은 그렇게 아주 작은 숨결처럼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