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를 품어준 그 바다처럼
“그녀는 삶을 사랑했고,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했다.”
“엄마, 여기 와. 집이 너무 시원해.
바닷바람이 맞바람으로 불어서 에어컨도 필요
없어.”
“엄마 언제 와? 그냥 몸만 오면 돼.”
엄마도 이 바다의 집과 이 여유를 누리셨으면 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우리 딸 괜찮구나.” 하고 안심하셨으면 했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 커피를 두고
창문을 열면 바닷바람이 스며든다.
저녁이면 거실은 금빛으로 물든다.
이 조용하고 넓은 시간을
엄마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해,
엄마는 서른다섯이었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였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는 슬퍼할 틈도 없이
자식들을 키워야 했다.
어느 날, 주말집에서 포근히 잠든 새벽.
꿈속에 젊은 엄마가 보였다.
어두운 새벽, 통근버스 안.
출발을 기다리며 가방을 꼭 안은 채 창밖을 보는
엄마.
유리창에 비친 얼굴이 너무나 앳됐다.
눈물이 터져 깨어났다.
엄마는 그 버스에서
얼마나 많은 꿈을 삼켰을까.
그 목메는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젊은 엄마는 성실하고 묵묵하게
그 시간을 버텨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부딪히는 내 미래가
지워지지도, 삼켜지지도 않는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 속에 요구되는
희생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 새삼 알게 됐다.
나는 엄마에게 더 주고 싶다.
조금이라도 채워주고 싶다,
엄마가 잃어버린 꿈을.
그러나 젊음을 돌려드릴 수도,
살아내느라 놓친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진 것을 건네보는 것뿐이다.
좋아하는 음식, 작은 선물, 사소한 말 한마디.
고작 이것뿐이지만,
내가 가진 걸 다 주고 싶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엄마를 찾는다.
너무 기쁠 때도, 너무 슬플 때도,
너무 화나거나 속상할 때도.
엄마는 다 안다.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그날의 내 마음을 알아챈다.
엄마는 내 바다였다.
언제든 나를 품어주고,
말없이 기다려주는 그 넓은 품.
이제는 내가 엄마의 바다가 되고 싶다.
그저 머무르기만 해도 되고,
아무 말 없어도 편한, 그런 바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