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보다 늦게 오는 준비, 그 기다림의 서막
결혼 후, 우리는 아이를 천천히 갖기로 했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싶었다. 저축도 하고, 회사에서 자리도 잡고.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저절로 엄마가 되고 싶어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내 진로와 미래가 불안했고
크고 작은 일 앞에서 자주 흔들렸다.
그토록 바라던 업무를 맡았는데도
성취감보다 중압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마음을 내려놓자
임신이 찾아왔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임신 6주라는 걸 안 지 사흘 만에
유산 판정을 받았다.
몸은 아직 임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제야 내 몸의 변화가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생명의 무게를 알게 됐다.
내 안에 작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예정돼 있던 미국 출장은 취소되고
나는 수술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뜨니 회복실이었다.
"잘 끝났습니다."
짧은 말만 남았다.
남편에게도 잔인한 시간이었을 거다.
수술실 옆 분만실,
같은 대기실 공기엔 환희와 좌절이 공존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빠져나가고만 싶었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자 오한이 몰려왔고, 손마디가 시렸다.
약하게나마 산후의 고통이 남아 있었다.
지켜주지 못한 생명에 대한 자책이
차오르듯 몰려왔다.
그때 알았다.
많은 여자들이 유산을 경험한다는 걸.
그리고 나는,
내 몸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는 걸.
[아이에게]
엄마는 참 불안했어.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끝내 못 만나는 건 아닐까.
그 걱정과 한숨으로 시간을 보냈어.
그러다 엄마는 이미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기다림조차
너에게 다가가는 길처럼 느껴졌지.
언젠가 꼭 만나자는 약속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