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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Mar 28. 2018

참을 수 없는 불편함. 02 컨버스

#1. 컨버스 구매 수익을 나이키가 가져가는 게 왜 문제라는 거지요?

젊은 층의 운동화 구매자들은 컨버스를 신으며 자신들이 나이키의 글로벌 패션 유형에서 벗어났다는 티를 냈지만, 그들은 컨버스 구매 수익을 이제는 나이키가 가져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신시아 인로 64쪽  



몰랐다.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나이키가 2003년에 컨버스를 매입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헉하는 숨소리와 함께 내 신발장에 고이 보관되어 - 박스도 버리지 않고- 있는 컨버스화를 떠올려 보았다. 

하나같이 모두 색상과 디자인이 예쁜 신발들로서 어떤 옷과 매치해도 자신의 매력을 잃지 않는 신발이었다. 


군화같이 생기지 않아 조금은 더 편하게 신었던 컨버스마저 나를 울린다. 

컨버스 운동화 색이 제아무리 검정, 핑크, 형광 연두색일지라도 운동화 안은 카키(국방) 색일 뿐이었다. 


흐음. 



#1. 컨버스 구매 수익을 나이키가 가져가는 게 왜 문제라는 거지요?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사건 하나 

나이키 제품을 구매한다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마도 나이키의 아동노동 착취일 것이다. 몇 년 전, 어린이가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나이키 기업이 아동 노동을 착취하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조건을 개선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가 드러났다. 이 때문에 얼마간은 나이키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숨겨져 있는 사실 하나

나이키는 자체(미국 내) 공장을 포기하고 운동화를 생산할 공장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하청업체들에게 의존한 최초의 운동화 회사라고 한다. 나이키는 미국 이외 값싼 노동력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국가와 지역을 물색했는데 많은 국가들 중 하나가 동/동남아시아 지역이며 남한 역시 미국에 비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나라 중 하나였다.  여성학 연구자인 김승경의 조사 결과에 따른다면 1960년대 당시 유럽 및 일본 운동화 회사는 남한 군사정부에게서 의도적인 구애를 받기 시작했다는데, 빠른 경제성장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국가 전반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남녀 구분 없이 젋은층이 노동에 결합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때 박정희 정권은 국가에 필요하고 애국하는 노동하는 여성이야말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고 고상하며 매력적인 존재임을 피력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국가 안보' '민족 자존심' '근대화' '산업 성장'이라는 개념들을 융합하면서, 딸들의 부모들을 설득하여 '품위 있는'(곧 '좋은 신붓감'인) 남한의 젊은 여성에게 '자연스러움'이란 부모 집 밖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그 정의를 급진적으로 바꾸었다. - 신시아 인로,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66쪽 - 


#2. 애국하는 '여성' 노동자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노동하는 여성에 대한 막연한 긍정을 갖고 있었다. 1960년, 1970년대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집 밖에서 일을 하면서 경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 여성의 권리 신장의 한 양상이라고만 치부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즈음에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운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굉장히 열악했던 노동 환경과 임금 수준, 대다수 남성 관리인과 여성 노동자 사이에 빈번히 발생했을 수밖에 없었을 권력에 의한 성폭력의 심각성을 크게 고려하지 못했다. 단순히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집 안이 아닌 집 밖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두었다. 그러나 왜 국가가 노동하는 여성을 애국자로 칭하며 여성이 일하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한 것에 대해 나는 궁금함을 가지지 않았을까.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여성의 노동력이 이용되었다는 것을 왜 진작 눈치채고 분노하지 않았던 걸까. 


군사 정부는 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급진적인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값이 저렴하고 통제하기 쉬운 '여성'의 노동력은 국가에게 중요했다. 이들을 애국자라고 칭찬하는 동시에 여전히 순종적인 존재로 남아 있도록 했다. 시민의 권리는 앗아가고 자율성은 박탈하되 그래도 나라를 위해 일하는 참된 일꾼임은 분명하게 전달했다. 



# 3.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군사화된 운동화 정치학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고 각 사회계층의 운동이 힘을 받으며 여성 노동자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시민으로 규정하고 이에 합당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여전히 여성들의 싸움은 이어지고 있지만 과거의 운동과 경험을 기반 삼아 발전하고 있다. 더욱이 예전에는 진지하게 고려되지 못했던 페미니즘적 관점과 성찰은 현재 사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물론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은 존재하지만 말이다. 


더 이상 남한은 유럽이나 일본 운동화 회사에 러브콜을 보내지 않는다. 이제는 남한 역시 다른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 세워진 의류 및 운동화 공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과연 한국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초국가적 기업들의 성장은 더욱 확장되면서 값싼 노동력을 찾아 많은 회사들이 동남아시아 지역을 찾는다. 이와 같은 현상은 자본주의 시대 대량생산이 만든 추악한 결과물이기도 하겠지만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이 사업의 군사화 역시 관찰해 볼 수 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도 저임금을 유지하며 과도한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구조를 지속시키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초국가 기업에서 지역에 공장을 세울 때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답을 그리 멀리 있지 않다. 



# 4. 난 그럼 어떤 운동화를 신어야 하지? 


모든 기업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이키나 아디다스, 리복과 같은 초국가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베트남이나 중국, 인도네이사와 같은 국가로 눈길을 돌렸다면 어떤 장치와 생각을 장려하는지 눈여겨볼 필요는 있다. 


그럼 난 어떤 운동화를 신어야 할까. 

'메이드 인 코리아' 신발을 신으면 되는 걸까. 

브랜드가 없는 운동화를 신으면 되는 걸까. 

작은 회사에서 만든 운동화를 신으면 되는 걸까. 



신시아 인로는 자신의 책에서 '노스웨트' 운동화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지며, 덜 군사화된 새로운 정치 토양에서 노력하려는 하나의 예를 소개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갖고 있는 한계 역시 나눈다. 모두가 공감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하나의 이념, 하나의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생각, 권력 구조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대안을 찾아 실행하고 지속시키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정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럼 난 어떤 운동화를 신어야 할까. 아니 어떤 신발을 신을 수 있을까. 

메이드 인 베트남이라고 버젓이 적힌 내 컨버스 운동화 말고 

군화와 똑같이 생긴 닥터 마틴 말고 나는 어떤 신발을 신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명쾌하진 않지만 비겁하지는 않기로 했다. 

더욱 불편해지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 얼마나 불편한가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메이드 인 다른 국가' 신발이라면 글로벌 시대의 산물이라고 당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신발의 실을 꿰었을 노동자가 어떤 환경에서 만든 신발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회사의 신발이라면 이 기업이 어떤 지역 정책 결정권자와 엘리트들을 만나(여성일지 남성일지를 추리해 가며) 어떤 지역에 공장을 세우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또한 섬세하고 들여다본 것은 주변과 나누는 것도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 비겁해지지 않는 것이다. 



더욱 불편해지겠다는 나의 결론이 

무턱대고 컨버스 운동화나 닥터마틴 신발을 구매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소비자로서의 삶을 너무나 충실히 살고 있는 나이기에 

매 순간 다가오는 소비의 유혹을 잘 뿌리칠 수 없는 것도 알고 있기에 

분명 새 컨버스나 닥터마틴 신발이 출시되면 그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하지만 잠시 멈추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한다면, 그래서 그 '신발을 사는 행위'에 대해 조금 머뭇거려진다면

그 머뭇거림이 점점 더 길어지고 길어진다면 나의 소비 패턴에 분명한 변화가 되지 않을까. 


당연한 것이 주저함으로 변화하는 순간이, 자연스러운 것이 멈춤으로 변화하는 순간이  

'군사화된 운동화'에 저항하는 작지만 중요한 하나의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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