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파친코> 와 <세 여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거센 파도처럼 계속 밀려드는 미래가 자꾸만 염려되어 책을 놓기 불안했다. 생생하게 묘사된 경상도 사투리가 익숙해서인지, 읽는 내내 주인공들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버들이 되어 마음을 다잡고 홍주가 되어 속이 시원했다가 송화가 되어 조금 아련했다. 그리고 펄에 공감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1900년대 초, 조선에서 포와(하와이)로 이민 간 사람들 중 ‘사진신부’로 불린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1910년부터 ‘동양인 배척 법안’이 통과된 1924년까지 조선의 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 정도의 여성들은 각기 다른 목표와 이유로 결혼이민을 선택했고, 포와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이민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인들이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노동자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많은 남성들이 홀로였다. 낯선 곳으로 바다를 건너온 ‘사진신부’들이 남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라곤 중매쟁이가 건네 준 사진 한 장. 많은 경우 남편들의 실제 나이는 사진 속 모습보다 훨씬 많았단다. 돌아갈 수도 없는 땅에서 그 사실을 알았을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버들과 홍주, 송화의 찐득한 연대가 시작되는 곳.
세 여자는 따로 또 같이 연대하며 일생을 살았다. 각기 다른 농장과 장소를 갈 때 헤어졌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도움이 필요하겠다 싶으면 서로에게로 향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이들의 찐득하고 끈끈한 연대에 마음을 다해 응원했을지 모르겠다. 이들의 연대가 휘청거렸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독립운동 노선을 두고 정치적 다름을 확인했을 때였다. 여성들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자 자금을 모으는데 열심이었는데, 하와이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이승만과 이를 추종하는 사람과 그와 다른 길을 걷는 박용만 단장 사이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아랫동네와 윗동네로 나뉘어 가는 교회도 다르고, 같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과는 계도 함께 하지 않고 아는 사이에서 반가움은 사라졌다. 정치적 갈등이 어떻게 공동체를 와해시키는지 지금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놀라운 것 없는 사실에 조금 놀랐고 그리고 씁쓸했다.
1907년부터 1941년 즈음까지, 시대적 배경을 촘촘한 일상으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어떻게 사람들의 일상에 밀접하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생생한 설명이었다. 조선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이어야 한다는 박용만 단장의 사람들이 군사학교를 열어 조선인들을 모으고, 버들의 남편 태완은 결국 독립운동을 하고자 중국으로 향한다. 홍주를 비롯해 버들과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승만의 지지자들이었기에 한동안 섭섭함이 서로의 관계를 덮었다. 그러면서 작가는 포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에 의해 생계를 일구는 사람들의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후에 버들과 홍주가 개성 아주머니에게 세탁소를 물려받는데, 이들의 최대 단골손님들은 군인이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진주(펄, 버들의 딸)는 이름 때문에 친구들에 놀림을 받고, 정호(데이비드, 버들의 아들)는 일본계라고 오해받고 차별받지 않는 대신 미국 편에서 참전을 결심한다.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Don’t call me that, I am Pearl.
조선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생각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펄은 엄마를 답답해한다. 조선어보다 더 익숙한 영어로 엄마에게 호소한다. 진주보다 펄로 불리기를 더 선호하는 펄, 미국 본토에서 일본계로 오해받는 게 싫다며 미국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정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따라가 본다. 한 사람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지만, 정체성과 문화의 상당 부분 영향을 주는 사는(살았던) 곳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두 세대가 한 가족으로 공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포와로 간 이민자들을 생각하며, 또 다른 이민자를 떠올려 본다
1900년대 초, 조선이 싫어 공부가 하고 싶어 새로운 삶을 꿈꾸며 혹은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의 정착을 결심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 포와로 간 이민 1-2세대들을 그린다면『파친코』는 일본으로 간 이민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1910년부터 1989년까지, 모두 4세대에 걸친 이야기라 꽤 책이 두꺼운데, 이 역시 작가의 필력으로 두께가 주는 무게감이 기대감으로 바뀌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 역시 한국계 미국인으로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의 파트너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일본으로 거주할 기회가 생기면서, 취재와 연구를 통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과 『파친코』를 쉽게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소설 모두 여성 서사라는 점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포와의 '버들'과 오사카의 '선자'는 어딘가 닮았다. 그들이 조선을 떠나는 이유는 달랐지만, 더 나은 삶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 기대는 쉽게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처한 상황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마주하고 해결한다. 놓치지 않는다. 두 소설의 시대적 배경 역시 겹쳐서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모습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감히 덧붙이자면, 『파친코』에서는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과 그들의 다음 세대가 경험하는 교차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이 모두 남성(선자의 아들과 손주)이라 조금 아쉽긴 하지만.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이 궁금하다면
이 책까지 소개하겠다는 건 나의 무리수다. 하지만 이금이 작가가 ‘사진신부’가 되어 포와로 떠나는 세 명의 여성을 보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영감을 받았다는 부분을 읽는 순간 떠올랐다.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 역시 여성 서사 중심의 소설이며, 시대적 배경도 비슷하다.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의 파트너로 알려져 있던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1920년부터 1956년까지,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하기 위해 조선을 떠나 상해로, 모스크바로 이동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산다. 조선희 작가 역시 세 여자가 찰랑이는 단발을 하고 청계천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숨어있던 서사를 발굴해 냈다고 했다. 앞의 두 소설에서 여성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일상에서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면, 이 세 여자들은 독립운동이 떠남의 이유였고 삶이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안보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라 잘 알지 못했던 공산주의 운동을 펼친 서사라 흥미로웠다. 특히 북한의 고위간부직까지 맡은 허정숙의 호방함을 보는 것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즐겁다.
-
100년 전 여성들의 삶을 책으로 읽는다는 게 이렇게 가슴 설레는 것은, 아마도 작가들의 탄탄한 연구와 조사를 바탕으로 밀고 가는 필력이 큰 몫을 하겠지만, 나의 삶과 여전히 공감되고 연결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거다.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타국에서 한국으로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온다. 공부를 하고 싶거나 좋은 일자리에 취직하고 싶거나 혹은 결혼을 이유로 이주를 결정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주하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환대, 관용은 어떻게 얼마나 달라졌을까. 혹은 같을까. 정착하는 곳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강요는 한 사람의 다양한 정체성에 어떻게 스며들어 작동하고 있을까. 내 주변 친구들을 자꾸만 보게 한다.
세 작가의 시선과 관점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서사가 더욱 풍성하고 다양해지는 것은 무척 설레고 감사한 일이다. 독자들의 또 다른 시선과 생각이 서사를 더욱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줄거라 생각한다. 더 다양한 사람들의 행적이 발굴되어 역사의 스펙트럼을 쫙쫙 넓혔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거두절미하고 세 소설 모두 재밌다. 읽거나 말거나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지만 조금 욕심내어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흐흐.
'읽거나 말거나' 매거진은 기록으로 남기고픈 책의 서평을 담고자 합니다. 점점 사라지는 기억력을 한탄하며 (부족하나마) 즐겁게 글로 남겨 보고 싶어요. 매거진 제목은 쉼보르스카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에서 빌렸습니다. 그처럼 재치있는 서평은 못되겠지만 늘 마음에 두고 써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