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성하는 조각들의 해체와 결합, 그리고 재구성
<다크룸>을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는 단 하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딸이 어떻게 아버지를 인터뷰하고 끝까지 글을 썼을까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수전 팔루디’가 잘 알려진 페미니스트이자 집요함과 치밀함으로 찬사를 받았던 <백래쉬>의 저자이며 인터뷰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트랜스젠더’라는 부분이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을 테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주요한 이유는 아니었다. <다크룸>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을 즈음, 나는 정치적 갈등으로 아버지와 1년 반 정도 대화를 중단한 상태였고, 그 상태를 바꿔보기 위해 아버지에게 드리는 글을 묶어 책자로 출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크룸>과 비교해 두께도 형편없이 얇고, 끈질긴 인터뷰(사실 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터뷰가 불가능한 상태였다)도 없었으며, 그저 아버지에게 드리는 긴 글이라고 생각해 정식 출판을 생각하지도 않았던 책자였다. <기종과 하늬>가 그렇게 세상에 나올 소박한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에 <다크룸>을 접했다. 둘의 다름은 명백했지만 ‘딸과 아버지’라는 공통점이 강렬하게 나를 잡아당겼다. 왜 수전 팔루디는 30년 가까이 관계가 멈춘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다시 시작했을까, 긴 시간 동안 이어간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단지 아버지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는 제안 때문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딸과 수차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그리고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싶었을까.
<다크룸>에서 수전 팔루디는 ‘정체성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취재하고, 분석하고, 사유하고, 대화한다. 수전 팔루디는 아버지의 긴 여정을 20세기의 젤리그(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의 여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헝가리 유대인’ 이슈트반 프리드먼에서 ‘동화된 헝가리인’ 이슈트반 팔루디로 변신했고, 다시 20대에 ‘미국 남자’ 스티븐 팔루디가 되었다가 76세에 스테파니 팔루디가 되었다(다크룸, 626쪽). 저자는 자칫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는 아버지의 유동하는 정체성의 근간을 찾기 위해, 헝가리의 유대인으로 태어난 이전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개인적 및 사회적 시공간을 넘나들며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어떤 순간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유대인의 삶, 더욱이 헝가리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역사를 읽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내가 누구다라는 감각은, 내가 그 좌표를 파악할 수 있는 한, 반골 기질과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만약 그 정체성이 위협당한다면, 나는 그것을 주장했다. 나의 ‘정체성’은 그것이 가장 위협당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더 활발해졌다. (다크룸, 94쪽)
<다크룸>은 분명 스테파니 팔루디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 수전 팔루디는 자신의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말한다. 페미니스트 정체성이 “아버지가 겪은 ‘정체성 위기’의 잔해”로부터, 미국 남성성의 페르소나를 증명하지 못한 지점에서부터였다고 밝힌다. 취미이자 피난처였던 페미니즘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또, 사진 기자로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수정하고 숨기는 직업을 갖는 아버지와 무엇이든 밝히려 하는 기자 사이의 “격화된 싸움”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지금의 수전 팔루디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선택이면서 동시에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었던 자산과 배경을 알아차리고 이에 쉼 없이 반응하는 것이었다. “내가 도망칠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였음을 고백하면서도 “격화된 싸움”에 직접 뛰어든 수전 팔루디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헝가리와 미국, 아버지와 주변 친구, 친척, 페미니즘과 트렌스젠더리즘을 경험하고 연구하는 이들을 취재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답을 확장시켰다. 때로는 분명 지난하기만 했을 일련의 과정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영역을 교차했다.
이와 같은 저자의 자질, 실천과 행동은 내가 <기종과 하늬>를 쓰기 시작했을 때와 쓰는 동안의 순간들, 쓰고 나서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단순히 비교하기엔 상황과 맥락이 분명 다르지만 나는 저자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수전 팔루디가 왜 싸움을 멈추지 않았는지에 시선을 두었다. <기종과 하늬>를 출간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냐는 거였다. ‘그러게요, 왜 시작했을까요. 그리고 왜 여기까지 왔을까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이 글의 의미를 의심했던 적이 많았음에도 말이죠.’ 스무 살 이후 줄곧 정치적 다름으로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모래성처럼 쌓아 듬성듬성 숨겨 두었다. 그러던 것이 활동으로 드러나면서 갈등이 극대화되었다. 아버지는 딸이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딸의 세세한 활동을 모두 알지 못하셨다. 그러다 최근 인터넷을 활발히 사용하시면서 딸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셨다. 기종이 바라는 평화와 하늬가 희망하는 평화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기에 대화는 중단되었고 우리는 침묵을 차가운 얼굴로 대면해야 했다.
아버지는 대학을 들어가는 나에게 ‘이념서클’과 ‘학생회’에 들어가지 않기를 조언했다. 예전 학생운동을 했던 막내 삼촌이 떠올라서였다. 아버지가 군 복무 중이었을 때 삼촌은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사복경찰들이 집에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들었고, 데모를 하다 허리를 다쳐 누워있는 삼촌을 보았다. 아버지는 막내 삼촌을 충분히 돌보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속상해하셨다고 했다. 80년대의 학생운동과 2000년대의 학생운동이 다르고 사회의 분위기도 달라졌지만, 아버지에게는 가족이 학생운동을 하는 것이 우려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막내 삼촌은 그 이후 아버지와 같은 보수적 성향을 짙게 띄게 되었는데 이런 변화들이 아버지에겐 안타까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삶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나는 역부족이었고, 스무 살의 나는 그저 사람들이 좋아서 ‘이념서클’과 ‘학생회’를 모두 가입했다.
짧게나마 경험했던 운동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시선과 사고를 쌓아 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확립되었다고 믿었던 정체성이 세게 흔들리면서 무수한 변화들을 마주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딸의 변화를 내가 고향집을 방문할 때만 가끔씩 감지할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그 변화들은 아버지의 삶을 뒤흔들 만큼 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뭘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나중에 크면 느그 막내 삼촌처럼 그렇게 변할 거다.” 아버지는 내가 어려서 좌파가 되는 거라며 ‘어른’이 되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하셨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때로는 마음속으로 다지고 새겼다. ‘삶으로 증명할 거라고. 나는 다르다는 것을.’
더 이상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했으면서 변화하지 않은 나를 조금 더 친절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종과 하늬’ 사이에는 모르는 서로만이 남아 끝내 알지 못하는 불필요한 후회만 남을 것 같았다. 분명 스무 살 이전과 이후의 나는 달라진 점도 있을 테지만, 난 여전히 기종의 딸 하늬이고 기종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래서 <기종과 하늬>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함께했지만 서로 다를지도 모르는 기억의 조각들부터 시작해 살아가는 시공간이 달라 알지 못하는 일부의 조각들을 꺼내놓았다. 처음에 글을 쓸 때는 아버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 달라’라는 욕심을 껴둔 채 글을 쓰면 쓸수록 글은 나아가질 않았고, 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글을 쓰지 못했던 날들도 많았다. 내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나는 이해받고 싶었던 거였다. 내 활동을 부끄럽다고 여겼던 아버지에게. 딸로서는 그 누구보다 자랑스럽지만 ‘활동하는 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기종에게.
솔직한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감정을 덜어내고 순간을 낯설게 바라보기 위해 타인의 글을 읽고, 타인의 조언을 새겼다. 아버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다. <기종과 하늬>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나만의 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은, ‘기종’이란 사람이 내 아버지만이 아니라는 사실과도 겹친다. ‘기종’은 내 아버지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60대 경상도 남성이자, 국가의 존립과 자아의 존재를 동일시하는 애국심 넘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며, 진심을 다해 태극기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 나의 아버지기도 하다.
무너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글을 완성했다. 부족하지만 뿌듯한 글이었다. <기종과 하늬>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긴 글이면서도 내가 누구인지 그 위치를 확인하는 시도였다. 지금의 내가 형성되기까지 수많은 반응과 반동, 파동과 파고를 세세히 알아차리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정체성을 재구성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할 하나의 순간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감히 수전 팔루디도 <다크룸>을 집필하면서 비트랜스젠더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해체하고 새롭게 결합하기를 반복했다고 믿는다. 수전 팔루디는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둘러싸고 어떻게 이데올로기와 젠더의 수행이 한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가를 추적한다. 더불어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마주한다. 마주하면서 발생하는 힘, 이는 타인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사유의 역능이자 견고하게 굳어져 있는 관계를 깨고 재구성할 수 있는 유연함이다. 그리고 불확실한 자아가 단단해지는 짜릿한 경험이다.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들여다볼 수 있음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였을까? 나는 수전 팔루디와 스테파니 팔루디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에서 맴돌았다. 기종과 하늬의 오롯한 마주함을 기다리며.
몇 분 정도, 아버지와 나는 서로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그 손을 잡았다. … 아버지를 다시 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렇게 자주 그녀의 얼굴에 떠오르던, 속을 알 수 없는 미소가 아니었다. 나는 팔을 들어 올렸고, 그녀는 프로처럼 그 밑으로 빙글 하고 돌았다. (다크룸, 538쪽)
<다크룸>의 또 다른 서평들을 소개합니다. 조금 더 정석(?)에 가까운 글이 아닐까 싶어요. 젠더의 관점에서 세밀하게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수잔 팔루디 <다크룸> 리뷰 1 / 김효영, 웹진 한국연구
수잔 팔루디 <다크룸> 리뷰 2 / 조혜영, 웹진 한국연구
글과 함께 소개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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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Mauriat "Vivre pour vivre"
<기종과 하늬>에서 함께 소개하고 있는 곡입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폴 모리아'의 음악 중, 제가 마음에 들었던 곡으로 골라보았어요. 흐린 오늘과도 어울리지 않을까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