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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늬바람 Sep 14. 2020

알파벳에게.

당신이라는 알파벳  / 03 _ A 에서 Z 까지.  

형광등 불빛이 환한 지하도를 빠져나갈 때였다. 사람들은 늘 그렇듯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늘 그렇듯 왔던 길도 헷갈려 천장에 매달린 출구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아, 이쪽으로 가면 되는구나. 발걸음을 옮길 찰나, L에게 전화가 왔다. 웬일이지?    

  

“하늬” 

“응.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그냥 한번 전화했어. 잘 지내고 있지?” 

“하하하하. 뭐야. 그럼 그럼 잘 지내고 있지.”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좀 더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 너머 느껴지는 L의 머뭇거림을 알 수 있었지만 나는 부러 말하지 않았고 그 역시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왜 L이 굳이 문자가 아니라 전화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이래저래 심란할 텐데 씩씩하게 전화받아줘서 고마워.’      


전화를 끊고 나서 L에게 다시 문자가 왔다. 갑상선에 이상이 있다는 내 소식을 접하고 전화를 하기 전까지 머뭇거렸을 그의 모습이 떠올랐고 전화를 해서도 일상적인 안부만 물었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맴돌았다. 직접적인 위로의 말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일렁였다. 고개를 들어 출구 계단 끝을 쳐다보니 푸른 하늘이 살짝 보였다. 기분이 맑아진 탓인지 바깥 날씨마저 화창해 보였다.      


L에게 전화를 받고 나서 며칠 뒤 그와 함께 일하는 W에게 연락이 왔다. 역시 내 소식을 듣고 고민하다 연락한 것이었다. W는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을 보내주었는데 포장이 무척 예쁘게 된 상자에 배달되었다.      


아프고 나서 친한 친구들과 동료들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거나 집으로 보내주었다. 특히 동네 친구인 R은 한번 만나면 음식을 가득 챙겨주곤 했는데 함께 사는 동생은 어디서 이 먹거리들이 오는지 궁금해했다. 그때마다 나는 자랑하듯 얘기했다, 친구들이 보내준 거라고.      


코로나 19로 지인들을 자주 만나기 어려웠고 나도 기운이 많이 낮아진 탓에 예전만큼 밖에 나가지 못했다. 내 컨디션을 잘 몰랐을 때는 약속을 자주 잡기도 했는데 결국은 탈이 났다. 머리가 아프거나 그다음 날 꼬박 반나절 정도는 쉬어줘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라면, 가끔 있는 약속을 위해 컨디션을 조절하는 기술이 +1 정도 늘어난 것이다. 몸과 마음을 나눌 에너지를 평소에 축적해 두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 싶은 만큼 만날 수 없다. 즉흥적으로 어딘가를 가거나 친구를 만나는 걸 좋아했지만 지금 그러기엔 몸과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온전한 마음으로 그 약속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때로는 거절하기도 한다. 미안할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이런 나를, 친구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나를, 나 자신이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집에서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일이 많아지면서 누군가가 보내준 먹거리를 조리해 먹거나 다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이 떠오르고 그들의 요즘이 궁금해진다. 예전에는 어머니에게 김치나 반찬을 받는 것조차 불필요한 일이라고 거절하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부탁하는 횟수가 늘었다. 음식을 만들고 택배를 부치는 수고로움이 어떤지 알기 때문에 쉽게 부탁할 수 없었는데, 몸이 아파질수록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한되거나 만들어 먹을 힘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함께 사는 동생이 많이 챙겨주기는 하지만 사람 각자마다 소울푸드라는 것이 있지 않나. 나의 경우는 그게 엄마가 만들어주는 따뜻한 국이었다.      


예전의 나를 곰곰이 떠올려 보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걸 온몸으로 거부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아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의지하지 않으려 했거나 의지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했다. 물론 성향이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의지한다는 것이 나쁘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라고 되새겨 본다. 누군가의 호의를 넙죽넙죽 받아 보는 연습을 해보기도 하고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함께 나누어주길 요청하는 것이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많이 다독여준다. 지금껏 그러지 않았으니까.      


아프지 않았으면 몰랐을 또 다른 감각.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임에도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더 옳다고 믿었던 예전의 나에서 ‘의지’한다는 것이 남에게 부담을 안겨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불현듯 나를 검열하는 기준에 여전히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이 채워준 음식과 마음을 돌아보는 연습을 한다.      


<안녕, 사르코이드> 매거진을 연재하기로 결심하고 처음으로 나의 속내를 꺼내 보이며 나를 조망해보는 시도를 했다. 아픈 몸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는 결코 나만의 것은 없었다. 스쿼트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던 S와의 100일 챌린지로 이 매거진을 시작했고 JJ와 비슷한 시기에 금주를 하게 되어 함께 어려움을 토로할 수도 있었다. M을 만나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진료를 진행하게 되어 질병에 대한 걱정을 그 누구보다 솔직하게 나눌 수 있어 다행이었고 그 덕분에 대학로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K와 같이 책을 보내주고 소개해주는 지인들이 있었기에 뭉텅이로 주어진 시간이 두려운 때는 책 뒤로 숨어 지낼 수도 있었으며, 그 덕분에 하고 싶은 말들을 글로 옮겨 적을 힘도 생겼다. 자칫 피곤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이었음에도 지인들이 매거진을 구독하고 댓글을 달거나 ‘잘 읽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줄 때마다 힘이 되어 중단하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얼굴 본 적도 없고 만난적도 없는 누군가가 내 글에 반응을 할 때면 마냥 감사했다. 요즘에는 함께 글을 쓰며 서로의 글로서 안녕을 챙기는 모임도 하고 있어 글쓰기의 근육이 다져지는 느낌이다. 또, 의료파업으로 갑상선 수술이 연기되었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망연자실한 마음을 다독이며 친구를 위한 위로를 거침없이 해주는 삶의 동반자들이 있어서, 괜찮은 요즘을 보낼 수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매거진을 연재하는 8개월 동안 몇 번 크게 아픈 적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꼭 동생이 며칠 집을 비울 때였다. 동거인이 탄탄하게 다져주었던 돌봄의 소중함을 그때마다 깨달았다.      


그래서 꼭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알파벳으로 호명하고 나름의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었다. 알파벳으로 불리지 않았어도 이 글에 담지 못했어도 ‘지인’이나 ‘친구’라는 대명사에 뭉뚱그려 표현하기는 했어도 당신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만난 적 없지만 글에 누구보다 먼저 반응해 주시는 구독자 분들 역시 아직 만나지 않은 알파벳 일지 모르겠다. 


지금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 그대들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 맨 위 사진: 2020년 6월 29일, 살롱드씨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 준비되었던 음식입니다. 꽃도 있지요 :)  




<안녕 사르코이드> 매거진의 마지막 작은 시리즈 '당신이라는 알파벳'이 끝났어요. 나누고 싶은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또 다른 기회에 소개할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매거진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예정대로였다면 오늘 갑상선 수술을 하는 날이었는데, 의료파업으로 연기되었어요. 연기된 것 자체는 무척 속상하지만 그전에 이 매거진을 마무리할 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곧 마지막 글로 찾아올게요! 



글과 함께 소개하는 음악 

Dayglow _ "Can I Call You Tonight?" 

* 영상이 재생되지 않으면, 이 링크에서 음악을 감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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