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를 지켜보고 있는 너에게
아롱이가 떠난 후에 자꾸 눈물이 나요.
아무것도 먹기도 싫고, 나가기도 싫어요. 이건 무슨 병인 거예요?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우리의 곁을 떠날 때 슬픈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우울하기도, 때로는 든든한 존재가 사라진 것 같아 불안하기도, 또 식욕이 줄어들기도, 결국 잠이 오지 않기도 하지요. 이렇듯 소중한 존재의 상실 이후에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이러한 현상을 뜻하는 말로 펫로스(pet loss)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Barbara Stephenson이라는 심리학자가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한 고통을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는 용어로 Pet Loss Syndrome라는 단어를 제시하면서부터 점차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펫로스(pet loss)
- 반려동물의 상실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
- 반려동물 상실경험 후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세
아직까지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펫로스라는 것이 정신질병(DSM-5)으로 분류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것을 정신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펫로스 경험 후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정신질환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SM-5: 미국 정신의학회(APA)에서 출판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현재까지도 심리학자, 동물학자 또는 수의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펫로스에 대해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또 그에 따른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 중에서도 동물 호스피스이자 작가인 Rita Reynolds(2011) 작가가 설명하는 펫로스의 정의를 가장 좋아하는 편입니다.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의 상실감을 나타내는 말로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뒤 느끼는 정상적인 감정의 표현이다.
제가 펫로스를 경험하고 계신 분들께 가장 우선적으로 전해드리고 싶은 메세지가 있다면 바로 위와 같이 펫로스라는 것은 [ 정상적인 감정의 표현 ] 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또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식음전폐(食飮全廢)하는 것 모두 다 그럴 수 있는, 그럴 수밖에 없는 반응들이기 때문입니다.
펫로스 증후군과 관련한 연구에 힘을 쏟고 있는 Millie Cordaro(2012) 박사가 말하길 펫로스 증후군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정받지 못한 비애(Disenfranchised Grief)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펫로스 증후군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자체로서의 사회적인 시선과 인식이 좋지 않아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미성숙하고, 미흡한 대처가 제공되므로 이로 인해 반려인의 우울장애,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다양한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느낌이지만 반려인에게 반려동물이란 단순히 귀여운 애완동물이 아닌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반려인은 자신이 돌보는 반려동물을 물건, 물체(Object)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존재, 주체로서 여기며 자신의 동반자, 반려자 또는 가까운 가족과도 같은 구성원(박진경, 2022)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려동물의 상실을 단순한 애완동물의 죽음이 아닌, 마치 가족 구성원의 사별과 같은 소중한 존재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 펫로스 증후군을 바라봐야만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살펴보아도 펫로스 증후군은 당연한 과정입니다. 스위스의 저명한 심리학자 Kast Verena(2007)가 말하길 사람이 죽음과도 같은 상실을 경험하게 되면 반드시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애도의 과정이 비난받거나, 방해를 받게 될 경우 혹은 억압을 경험하게 되면 당사자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의미 없다 여기며, 나아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무가치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쌓여 결국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변질되고 말 것입니다(Kast, 2007).
또한 동물복지중심의 언론활동을 펼치는 애니멀피플(2021)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의 죽음을 지켜본 반려인의 절반 가량(49.8%)이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반려동물과의 사별 이후에 펫로스 증후군을 겪는 현상은 점점 더 흔해지고 있는 추세이나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사회적 인식의 수준이 낮으며, 적절한 대처와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즉,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 비애(Disenfranchised Grief)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첫 번째 칼럼에서 드리고 싶은 메세지는 단 한 가지입니다. 제가 상담을 배우면서, 또 상담사로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인 [ 그럴 수 있다 ] 라는 메세지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펫로스를 경험하고 있나요? 자꾸 눈물이 나고, 아무것도 먹기 싫고, 집 밖으로 나가기도 싫나요? [ 그럴 수 있습니다 ] 당연히 가족과도 같은, 아니 가족 그 자체인 사랑하는 아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전혀 이상한 병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반려동물이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되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하죠? 이는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지개(Rainbow)라는 영단어 그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지개라는 것은 반드시 비(Rain)가 온 후에 나타나는 현상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떠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한 동안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되고, 또 그 슬픔이 넘쳐흘러 결국 매일을 눈물로 지새우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언젠가 그 마음속 비가 그치고, 슬픔이 눈물로 다 표출되고 나면 마음속에도 반드시 무지개가 나타날 겁니다. 그 순간이 바로 사랑하는 나의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잘 건넜다고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요? 그러니 충분히 슬퍼하셔도 됩니다. 절대로 유별나거나, 유난스러운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했는데 슬픈 건 당연하잖아요. 그러니 사랑하는 아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동안, 그 무지개다리가 희미해지지 않도록 많이 울어주세요. 그러다 보면 반드시 내 마음속에도 무지개가 나타날 거예요.
Kast, V. (2007) I Traquern: Phasen und Chancen Des psychischen prozesses. I Verlag Herder GmbH
Millie, C. (2012) I Pet Loss and Disenfranchised Grief I Journal of Mental Health Counseling 34(3012), 283-294
Rita, R. (2011) I Blessing the Bridge: What Animals Teach Us About Death, Dying and Beyond I NewSaga Press
박진경(2022) I 펫로스 증후군과 상호작용적 독서치료-비블리오드라마 모형 I 신학과 실천, 81, 437-455
애니멀피플(2021) I 한국 반려동물 장례 인식조사 I 한겨레게 만드는 동물뉴스 애니멀 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