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속도와 경찰과의 만남
종교의 자유를 위해 고향을 뒤로하고 목숨을 건 수천 킬로의 향해를 떠난다. 항금을 때론 새로운 땅을 찾아 인디언과의 목숨을 건 대륙 횡단 이후 태평양에 이른다. 발리우드의 '3 idiots'에서 보여주듯 전 백만장자의 꿈은 미국 서부로 이어진다. 개성과 자유는 미국 역사의 시작이다. 개척과 독립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지 않은 곳이 미국 서부다.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에게 미국 서부의 운전은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의 관계를 생각게 한다. 도로에 관한 법이나 규칙들의 많은 부분이 미국에서 왔음에도 문화의 차이는 도로 위에서도 드러난다. 이국적이어서 흥미진진한 미국 서부 운전, 로드 트립은 관광이 아닌 여행이다.
제한 속도는 현실 세계다
샌디에이고의 5번 고속도로를 최 우측 차선으로 달린다. 랜트카와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한 속도를 넘어서지 않게 된다. 지역 주민들은 제한 속도에서 10~15마일 정도 초과하는 흐름을 형성한다. 전체적 흐름에 방해가 되는 차량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산호세에서 280 고속도로를 올리고 5분 남짓 지난다. 사이드미러로 경찰차가 보인다. 속도계를 보니 제한 속도를 15마일 정도 넘어서고 있다. 차창 넘어의 경찰은 가볍게 눈길을 던진다. 정차를 요구하지는 않고 잠시 나란히 달린다. 주변 차량보다 조금 빨랐던 속도를 흐름에 맞추자, 경찰차는 가던 길을 간다. 경찰들의 단속 기준은 제한 속도위반이라기보다는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다.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은 사회 구성원 간의 조화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접근이다.
시내 주행에서는 제한 속도를 조금만 상회해도 총을 찬 허리에 손을 올린 경찰과 마주하기 십상이다. 차량 간의 관계만 존재하는 고속도로와 보행자가 공존하는 도로의 차이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사람이 먼저이기 때문에 불법 횡단까지도 보호한다. 맨해튼은 보행자의 천국, 운전자의 멘붕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서부 중에서는 보행자가 많은 편에 속한다.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한 다운타운 진입은 머릿 털을 곤두서게 한다.
미국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50마일부터 80마일까지 다양하다. 75마일 제한 속도가 60마일로 바뀌면 감속은 필수다. 급커브 등을 만나 낭패를 볼 수 있다. 현실 도로를 반영한 제한 속도 변경이다. 미국의 식품에 관한 법률은 한국과는 다르다고 한다. 한국은 사용 가능한 성분을 제시하고 그 외에는 불법화한다. 필요하면 승인을 받고 사용해야 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법적인 제한을 최소화하고 자유로운 사용을 허용한다. 도로에서도 유사한 문화 체험을 하게 된다.
로드 트립은 자연과의 만남이다. 수만 년의 흔적이 지평선까지 펼쳐진다. 여행의 목적에 충실한 제한 속도를 지키려 한다. 해가 지면 새로운 제한 속도가 필요하다. 가로등 없는 하늘에는 별들로 채워진다. 속도감은 물론 제한 속도에 대한 감각도 무뎌지게 한다. 능숙하게 달리는 차량의 후미등을 발견하는 행운은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 옛날 배들이 별을 따라 항해하듯, 몇백 미터 앞의 빨간 불빛을 따라 달린다. 옐로우스톤으로 향하던 밤길, 로드킬을 피하기 위한 대책이기도 하다.
경찰과의 조우
판타지를 그려내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는 토끼도 경찰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도로에서 만나게 되는 미국 경찰은 현실을 빠르게 인식시킨다.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며, 차나 몸에 구멍을 만들 수 있다. 단체 로드트립을 준비할 때면 경찰을 만나면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그들의 수신호에 무조건 천천히 따르기를 거듭 강조한다. 경찰의 신호를 무시하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세상은 갑작스러운 변화 속으로 빨려 들 수 있다.
제한 속도 75마일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경찰차를 발견한다. 곧이어 빠른 속도로 추월해가는 차를 감지한다. 내 차의 속도는 90마일이 조금 못 미친다. 잠시 후, 사이렌과 함께 경찰차가 빛의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천둥과 번개. 얼마 후 티켓을 발부받는 과속 차량을 목격하게 된다. 미국 경찰차는 배기량 6000cc로 특수 개조 차량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헬기가 등장하는 장면은 목격하지 못했다.
미국 서부에서 과속을 하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길의 직진 성향이 가져오는 속도 불감증이다. 차량 흐름이 많은 구간에서는 다른 차들과 보조를 맞추면 되지만, 무인지대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는 차량의 흐름도 적다. 장거리 운전에 최적화된 승차감은 무념무상의 명상 체험이다. 속도는 소리 없이 꾸준히 올라간다. 그래서 사용하는 안전장치가 크루즈다. 정속 주행으로 설정해둔다.
두 번째 원인은 조급 함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타크루즈, 카멜 비치, 퍼시픽 글로브를 거쳐 LA로 가는 일정은 새벽부터 꼬인다. 랜트카 사무실에서의 실랑이로 2시간이 늦어진 출발이다. 17 마일즈에서는 일행 간 소통 문제로 한 시간을 날린다. 태평양 넘어 동해를 찾으려는 시도는 발걸음을 붙든다. 덕분에 저녁 8시 정도로 예상했던 도착 시간은 계속 밀려서 새벽 2시도 아슬아슬하다. 과속이 시작된다. 창조설을 믿게 하는 경찰의 등장은 늘 경이롭다.
편도 6차선 고속도로에서 30마일을 넘는 과속이었던 듯하다. 두대가 동시에 경찰의 정차 지시를 받는다. 2인 1인 경찰 중 한 명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뒤에서 다가온다. 이때 문을 열고 내리기라도 하면 총소리를 듣게 된다. 조용히 기다린다. 운전석 차창에 경찰의 큰 얼굴이 나타난다. 창문을 열라고 손짓을 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창문을 내린다. 조금이라도 수상하다고 느껴지면 적극적 방어를 취할 수 있는 이들이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다. 이런 불상사를 대비해서 여권과 국제 운전 면허증은 글로브 박스 등 손에 잘 닿는 곳에 둔다. 빠르게 움직이면 총을 꺼내려는 시도로 오인받을 수 있다. (미국인들은 글로브 박스에 총을 두는 경우가 많다.)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다행히도 차 안에는 어린이들이 있다. 경찰도 이를 확인하고 조금은 긴장을 늦추는 모습이다. 일장 연설이 시작된다. 아이들까지 태우고 과속을 하면 위험하다는 당연한 훈계다.
어설픈 영어보다는 확실한 영어 불능이 낫다. 아이엠 쏘리를 연발한다.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경찰의 훈계를 경청하는 눈빛을 보이면, 경찰의 마음이 누그러지기도 한다. 그리고 빨간 스티커가 아닌 경고장만을 발급하는 경우도 많다. 늦은 밤, LA로 진입하던 두 명의 운전자는 경고장만으로 사태가 수습되었음에 안도하며 숙소를 향한다.
선배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는다. 늦은 밤 산호세 시내는 인적도 차의 흐름도 드물다. 조금은 속도가 붙었나 보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정차한 곳은 한적한 주택가다. 국제 면허증을 받아 든 경찰은 잠시 서류를 작성하는 듯하더니, 주의 사항을 나열한 후 보내준다. 국제 면허증의 힘은 외국인 관광객임에 대한 증명이다.
미니밴 3열에서 숙면을 취하던 중, 갑작스러운 정차에 눈을 뜬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애리조나 고속도로 경찰이다. 과속을 했던 모양이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눈에 들어온 장면은 경찰 앞에서 서 있는 운전자다. 원래 잘 웃는 그녀는 경찰의 일장 훈계를 미소로 듣고 있다. 결국 법원 출두 명령서를 동반한 500달러가 넘는 스티커를 발부받는다. 잘생겼지만 깐깐한 경찰이었던 후문이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던 밤, 정신을 잃기 바로 전에 운전대를 와이프에게 넘긴다. 사이렌 소리에 깨어보니 경찰이 다가온다. 능숙한 와이프는 아이엠 쏘리와 슬픈 표정을 보낸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경찰 할아버지는 위험하다는 말과, 새해 첫날부터 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조언을 남기고 떠난다. 정찰제가 있는 듯 하지만 융통성이 많은 나라가 미국이다.
단체로 떠나는 여행은 밤이 되면 숙소로 모여들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경찰과의 에피소드는 맥주 한잔과 어우러지는 서스펜스 넘치는 이야깃거리다. 로드트립은 자동차가 필수품인 미국 문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다. 도로 위에서의 만남도 그중 일부다. 그렇지만 자연과 그 속에서의 삶을 만나러 온 여행이지 경찰을 만나로 온 여행은 아니다. 한두 번 경찰과의 조우는 안전 운전의 명약이 되어 주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