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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규 May 21. 2024

그때 그랬다면? - 시흥 있는 시흥

시흥군 동면이 서울에 편입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시흥은 “시흥 없는 시흥”이다. 시흥군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은 지금의 시흥시지만, 시흥군의 이름이 비롯한 시흥동은 금천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흥시에는 시흥동이 없다. 엉뚱하게도 시흥시에 “안산동”이 있던 시절까지 있다. 시흥IC도 시흥동과 시흥시에 각각 존재하고, 서울 서남부에서 시흥으로 향하는 표지판이나 택시는 시흥시가 아니라 시흥동으로 향한다.

시흥군에 시흥이 없어진 것은 1963년 지금의 시흥동이 있는 동면 일대를 모두 서울시로 편입하면서다. 역사를 되돌려보면, 시흥 없는 시흥이 아니라 시흥 있는 시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이때다.

다시 말하지만, 시흥군은 조선 시대의 시흥군과 과천군과 안산군을 합해서 만들어진 군이다. 그래서 시흥 중의 시흥은 조선 시대의 시흥군에서 나온 시흥군 동면, 서면, 북면 일대고, 그 중에서도 조선 시대 시흥향교 자리가 있던 시흥동이 있는 동면이야말로 진정한 시흥 중의 시흥이 되겠다. 이 중 이미 1936년에 서울에 편입되어 영등포가 된 북면은 어쩔 수 없었더라도, 동면, 서면만은 그대로 남았으면 시흥동은 시흥에 남았을 것이다.

1963년 서울 대확장 때에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하지만, 결국은 서울의 인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기 때문에 결국 서울의 확장은 계획한 것대로 완성되지 못했다. 시흥 중의 시흥인 동, 서, 북면은 지금까지도 한 생활권으로 연계되어 있지만, 이 중에 서면만이 광명시로 떨어져 나간 것은 이 때문이다.

영등포와 나머지 시흥 권역의 연계는 피할 수 없었겠지만, 1963년에 시흥군 동면을 편입하지 않았다고 하면 어떨까? 그 상태에서 구로공단이 개발되었다면, 구로공단이 있는 구로동이야 북면에서 비롯했으니 서울에 공단이 있기는 하겠지만 구로공단이 결국 너무 인기를 끌어서 2·3단지로 확장되었으니 시흥군에도 공단이 확장되었고 오히려 서울보다 시흥에 더 큰 공단이 생겼을 수도 있다.

한 가지 더 고려해볼 것은 군청이다. 동면 전체가 서울시로 편입되고 안양읍이 안양시로 독립한 이후 시흥군은 동서로 양분되어 군청을 양편 중 한 곳에도 두지 못하고 안양시에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시흥군은 뒤집어진 U자 모양이 되어서 동면이 전체 시흥군의 중심이 되고, 군청은 옛 시흥군의 중심이었던 시흥동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안양시가 독립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은 당시 정책이 군 내의 도시 지역은 시로 독립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고, 시흥군 동면이 서울시로 편입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청이 있어 행정 기능을 갖추고, 구로공단이 있어 산업 기반을 갖춘 동면은 결국 도시화되었을 것이고, 안양시의 뒤를 이어 시흥군에서 독립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은 무엇이 되었을까? 시흥군의 중심지이니 읍이 될 때 마땅히 시흥읍이 되었을 것이고, 독립할 때에도 시흥시란 이름을 가져가거나 적어도 시흥의 옛 이름에서 가져온 금천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구로공단의 배후 주거지로 개발된 광명시는 따로 떨어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 시흥시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행정, 산업, 주거기능이 함께 갖춰진 자족도시, 시흥이 있는 시흥시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시이니 중구·동구·서구 또는 금천구·관악구·광명구 3구를 갖추지 않았을까. 한편, 원 역사에서는 서울에 편입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가 안양시의 일부가 된 석수동도 시흥시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옛 안양천을 따라 형성된 구불구불한 광명시와 서울시의 경계는, 깔끔하게 정리된 안양천을 따라 형성된 금천구와 광명구의 경계로 바뀌었을 것이다.

시흥군 동면이 서울시에 편입되지 않아서 만들어진 가상의 시흥시와 안양시. 옅은 직선은 현재의 서울시 경계다.

나머지 지역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천, 군포, 의왕, 안산은 거의 역사를 그대로 밟아나갔을 것이지만, 지금의 시흥시 지역인 남은 시흥군에 신 시흥시의 영향력이 얼마나 뻗칠지 미지수다. 안양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군포와 의왕도 안양에 흡수되지 않았으니 시흥시가 남은 시흥군을 흡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엄연히 시흥의 정통성이 있는 시흥시가 있는 마당에 시흥군이 시흥시를 자처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유력한 새 시 이름은, 시흥군에서 가장 큰 지역인 소래읍에서 따온 소래시다.

따라서 현대의 시흥동을 중심으로 하는 시흥시와, 현대의 신천-연성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소래시가 생겨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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