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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누나 Oct 26. 2017

목욕탕 이야기

올해 최고 명작 '블레이드 러너 2049'



목욕으로 하루를 마치는 나는, 탕속에 앉아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되는데 오늘은 오전에 보았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계속 떠오른다.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명작이 아닐까.  


1982년 원작 '블레이드 러너'도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복제인간 '레플리컨트'와 인간과의 관계 속에 인간미를 다루고 있는 SF명작이었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했다. 2017년 올해 '블레이드 러너 2049'도 더욱이 리들리 스콧과 함께 내가 정말 애정하는 드니 빌뇌브가 감독했다. 새로운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훨씬 더 정교하다.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한스 짐머의 암울한 배경음은 암울한 배경을 더 암울하게 표현했다. 도시엔 자연이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게 인공이다. 음식은 건조된 각을 물에 풀어 넣어 만든다. 라이언 고슬링이 찾은 나무말을 보고 전당포 주인과 창녀(레플리컨트가 하는 직업)가 '나무'가 있다니 정말 부자구나. 하는 대사에서 자연이 없는 터전이 얼마나 침연에 떨어지게 하는지, 차라리 저 디스토피아에서는 레플리컨트로 살아가는게 낫겠구나 싶었다. 하루 24시간 중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이 햇살 하나 비추지 않는 어둠의 LA는 정말 곧 다가올 모습이었다.


재력과 권력있는 사람들이 이주해서 산다는 다른 행성인 뉴월드는 어떨지 몰라도, 어두운 도시 LA는 고층건물이 가득한 곳이었다. 햇살이 안드니 거리의 위생은 안 좋을 수 밖에 없다. 다양한 민족이 살아서 라이언 고슬링이 다니는 경찰의 기계조차 다국어가 입력되어 있었다. K, 라이언 고슬링이 데커드, 해리슨 포드를 찾아간 방사능 지역의 건물엔 '행운'이라고 한국어 간판이 붙어 있었다. 영화에서 혼합된 문화가 인종적으로 사회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거리의 위생보다도 더 지저분해 보였다. 레플리컨트였던 라이언 고슬링 만이었는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모르겠지만, 가정을 이루지 않는다. 영화 전반에서 아이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경찰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복도를 걸으면서 받는 대우를 보면 '인간'과 '레플리컨트' 사이에선 분명한 차별이 존재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신뢰 등 인간관계라는게 사라진거 같은 모습이다. 1편에서도 해리슨 포드의 아파트가 97층이었는데, 가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모든 개인이 하나의 유닛을 차지하고 있어야 그런 고층 아파트가 합리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가정이 구성되지 않는다면, 사람들 그리고 레플리컨트는 어떻게 '사귐'을 가질까? 영화 'HER'에서 등장한 통신 기반 여자친구가 여기선 '조이Joi'로 등장한다. HER의 더 개발된 버전을 완벽히 구현해냈다. 에미네이터로 3D화 시킬 수 있고, 진짜 사람과 싱크시킬 수도 있다. '조이'는 당신이 듣고 싶은 모든걸 얘기해준다. 조이의 광고 문구인 'Everything you want to hear'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라이언 고슬링의 상대였던 조이가 하는 말은 곧 K가 듣고 싶었던 것들이다. 


레플리컨트들이 스스로 재생산,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다는게 - 영화가 복제인간과 인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인간성, 인간미에 대해서 말하려는 도구이다. 결과적으로 그들도 자신들의 기적,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기를 희생하는지, 설사 스스로 생산하지 않았더라도 월레스, 자레드 레토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러브, 실비아 휙스는 월레스의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그 많은 월레스사의 생산물 중 가장 뛰어난 천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 생각해본다면, 레플리컨트와 인간 중 누가 더 '인간적'인지 의문이 든다. 


도시와 사회를 공부하는 내게 이 영화의 핵심이며 철학적인 질문인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느냐'하는 질문과 이 영화가 그려넣은 지구의 미래는 암담하였다. 그럼에도 담담하게 이것을 바라보게 된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냉탕에서 흑인 여자아이가 수영을 한다고 출렁출렁 흘려 버리는 물을 보며 

현재 내가 얼마나 큰 향유를 누리는지에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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