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헐크 호건과 나의 어린 시절

2025년 7월 26일

by 바쁜남자

아주 어린 시절이야기입니다. 초등학생 시절쯤 되려나.


친할머니댁 집 구조는 조금 특이했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마당이 있고, 한쪽에는 친할머니집이 있고, 다른 쪽에는 친척이 아닌 다른 식구가 살고 있고, 또 다른 쪽에는 또 다른 식구가 살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엄청 큰 집이 절대 아니에요. 지금 생각하면 4~5평도 안 될 것 같은 집에 다른 식구들이 살고 계셨어요. 한 마당을 공유하면서 사는 식구들이니, 남이지만 가족과도 다름없는 관계죠.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그 당시 친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할머니 댁에서는 TV보는 거 외에는 할 게 없으니 엄청 심심했어요. 그래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다른 집에 놀러갔습니다. 거기에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이 있었어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나이차가 분명 많이 났을 거예요. 그런데 그냥 형이라고 부르고 같이 놀곤 했죠.


그때는 형네 방에 가서 비디오 보는 게 유일한 놀이거리였어요. 형을 따라 졸졸졸 비디오방에 가서 보고 싶은 비디오를 막 빌렸죠. 후레쉬맨, 바이오맨, 마스크맨, 황금박쥐, 반달가면과 같은 속칭 전대물 비디오를 섭렵한 것뿐만 아니라, 형이 빌리는 성룡 비디오도 볼 수 있었죠.


거기에 추가로 그 시절에는 WWF라고 불리던 레슬링 비디오도 빌려봤어요. 얼티밋 워리어, 마초맨, 앙드레 더 자이언트, 미스터 퍼펙트, 더 브렛하트, 빅 보스맨, 홍키 통크맨, 디몰리션 등 다양한 개성을 가진 레슬러들의 경기를 볼 수 있었죠.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최고의 슈퍼스타 헐크 호건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취향이 평생을 간다고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40을 앞두고 있는 이 나이에도 여전히 WWE 레슬링을 챙겨봅니다. 남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며 유치하게 볼지도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전 재밌더라고요.


예전에 다른 글로도 남긴 적이 있는데, 레슬링 세계에서는 걱정도 두려움도 포기도 없습니다. 단순히 어른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인생을 배우기도 하죠. 그리고 ‘WWE’에서 ‘E’가 ‘Entertainment’에요. 엔터테인먼트이니 그 자체를 그냥 보고 즐기는 거예요.


최근에 불멸의 헐크 호건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했죠. 호건이 등장할 때 울려 퍼지던 음악, 노란 셔츠를 양손으로 찢었던 모습, 손을 귀에 갖다 대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했던 모습, 경기 막판에 맞으면 맞을수록 점점 더 힘이 샘솟아 경기를 화끈하게 뒤집는 모습, 이 모든 게 어린 시절 추억의 조각들로 남아있습니다.


불멸의 헐크 호건

그 시절을 함께해줘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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