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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쁜남자 Jan 29. 2024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

집 떠나와 산지 어언 4년차

“굳이 힘들게 나가 살아야겠어?”


“딱 1년만 살아볼게요. 이것도 경험이죠.”


“그럼 그렇게 살다가 다시 들어올 거야?”


“아니 그럼 뭐 어떻게 계속 나가 살아요. 돈 아깝게. 좀 살아보다가 다시 들어오는 거지.”



이렇게 말해놓고 나는 4년 넘게 독립하여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다. 당시에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부모님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월세 계약도 2년이니, 특별한 일 아니면 2년간의 독립은 확보한 셈이었다. 그러다 원룸도 옮겨보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삶을 생각보다 금방 적응했다. 이는 내가 다니는 회사 덕분이기도 하다. 나는 원자력 발전소 설비를 검사하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는 영광, 울진, 경주처럼 전부 바닷가 근처에 있다. 우리 회사는 대전에 있다. 그러니 발전소에서 일을 하려면 출장을 가야 한다. 흔한 직장인들처럼 당일치기 혹은 1박 2일, 길어야 4박 5일 출장이 아니다. 한두 달은 기본이고, 사업부서 같은 경우는 발전소를 옮겨 다니며 1년 중 300일 넘게 출장을 다닌다.



나는 사업부서에 비하면 많은 출장을 가는 건 아니지만, 한번 출장을 가면 한두 달 정도 장기 출장을 간다. 따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가 없기 때문에 발전소 근처 모텔에서 생활한다. 독립하기 전에도 출장은 다녔으니, 장기출장을 떠나면 저절로 자취생활을 하는 격이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혼자 밤 산책도 하고, 방에서 운동도 하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TV도 보며 내 시간을 보냈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내 시간이 좀 더 자유로워진다. 혼자 차 끌고 주변 관광지나 맛집을 찾아다니고, 혼자 영화도 보러 가고, 하루 종일 카페에서 멍 때리는 시간도 가졌다. 솔직히 부모님과 함께 살 때도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아무도 날 모르는 낯선 지역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기분은 분명 남다르다. 자유롭다는 느낌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다.



혼자 지내는 생활을 조금씩 경험해봤기 때문에 실제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혼자 사는 것이 그리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반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걱정거리였다. 그러니 처음에는 쉽사리 독립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독립의 필요성과 중요성, 내가 독립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 독립 후 내 삶의 계획 등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다. 단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잠깐일 거라는 이야기가 좀 더 설득력이 있었다. 아마도 부모님께서는 쟤가 저러다가 곧 그만둘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후로 시간이 벌써 4년이 흘렀다. 이제는 나도 그렇고 부모님도 그렇고 서로 떨어져 지내는 삶에 어느 정도 적응하였다. 나는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고, 부모님 역시 집에 언제 들어 올 거냐는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 



길가에 개화하여 노랗게 핀 민들레는 때가 되면 꽃받침 색이 변하면서 하얀 민들레가 된다. 하얀 민들레를 보면 입으로 “후~” 불어 꽃씨를 날려 보내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민들레 꽃씨는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 날아간다. 그러다 어딘가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면 그곳에서 번식을 시작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한다. 변한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생존력이 높은 민들레 특성 덕분에 우리는 봄만 되면 곳곳에서 민들레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때가 되면 떠나보낼 수 있는 용기, 때가 되면 떠날 수 있는 용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용기다.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인다면 어려울 것이 없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있다면 고민의 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마치 하얀 민들레를 꺾어 입으로 강하게 “후~” 부는 것처럼. 



바람에 의해 날아간 민들레 꽃씨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민들레 꽃씨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우리도 민들레 꽃씨처럼 아름답고 멋있게 떠날 수 있다. 











♬ 「독립운동歌」 플레이리스트 : 정서주 – 하얀 민들레 (원곡 : 진미령)



나 어릴 땐 철부지로 자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떠나는 것을

엄마 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요 할 수 없어요


안녕 안녕 안녕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


정서주의 [하얀 민들레] 중에서








※ 「독립운동歌」는 내 마음대로 만든 말이다. 내가 독립을 꿈꾸고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즐겨 들은 음악이다. 「독립운동歌」는 독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때, 나를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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