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길 떠나가야 해
태어나서 대전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집을 떠나본 것은 강원도 양구에서 군 복무할 때뿐이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전부 대전에서 나왔고, 무려 직장도 대전에서 다니고 있다. 살면서 부모 곁을 떠나 홀로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그 기회를 뻥뻥 차버렸다. 뒤늦게 고백하자면 당시에는 독립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부모 곁을 지키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건 분명 편한 부분도 있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밥 차려주시지, 옷 세탁해주시지, 내 방 정리해주시지, 심지어 이 모든 게 내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공짜라는 점이다. 부모님 역시 이 모든 걸 불편해하거나 귀찮아하시지 않으셨다. 내가 오직 공부와 일에만 전념하고, 거추장스럽고 성가신 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해주기 위한 부모의 선심이었다. 실제로 그랬고, 나 역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부모 품에서 여리고 여린 화초로 자라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솝우화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솝우화의 제목은 “선심으로 죽다”이다.
꼬리 없는 원숭이는 쌍둥이를 낳는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에게 정을 쏟고 정성 들여 젖을 먹인답니다. 다른 새끼는 외면하고 소홀히 다룬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기묘한 섭리로 어미 원숭이가 총애하여 젖가슴에 꽉 껴안는 새끼는 질식해 죽어버리고 홀대받은 새끼가 어른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솝의 『이솝우화』 - 66쪽
흠칫 놀랐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솝우화인 “토끼와 거북이”나 “여우와 황새”처럼 동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해피엔딩은 고사하고 아이들이 보기에는 조금 잔인한 결말을 가진 우화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선심으로 다가가지만, 결국 그 선심이 자식을 죽인다는 이야기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길 만을 바란다. 오직 그 마음 하나만 가지고 자식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좀 더 나쁘게 말하면, 자식의 삶에 간섭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러니 자식에게 이래라 저래라 조언으로 포장된 명령을 해도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용서된다. 부모 마음에는 악의가 없고, 오직 선심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솝우화 “선심으로 죽다”를 통해 부모의 선심이 낳은 비극적인 결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눈에 보이고 객관적인 성장은 확인이 쉽다. 길이를 재보거나 점수를 매겨 성장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굳이 내가 확인하지 않고, 남이 확인할 수도 있다.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관적인 성장이다. 이 같은 성장은 남이 판별할 수 없다. 오직 본인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성장 여부를 알 수 있다.
나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때도 난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까?”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다면, 그 부분에서만큼은 성장했다고 판단한다. 지난날을 막연하게 후회하는 건 아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거다. 그때 그 선택이 진정 최선이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내면이 성장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기 마련이다.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선을 얻었다면 그는 분명 성장한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부모 곁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때도 난 그 기회를 뻥 차버릴 것인가?” 내 대답은 당연히 “아니.”였다. 어릴 때는 그저 부모랑 함께 사는 것이 좋고, 부모 곁에 있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부모를 위한 삶이었지, 내 삶은 아니었다. 그걸 뒤늦게 깨달았고,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로부터 ‘금전적으로 독립’, ‘공간적으로 독립’, ‘정서적으로 독립’이 이루어졌을 때, 진정한 독립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어렵게나마 그리고 뒤늦게나마 그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나가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성장하기 위해 내가 아닌 날 버리고 이제는 떠나려고 한다. 진정으로 내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낀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말이다.
♬ 「독립운동歌」 플레이리스트 : 크라잉넛 - 갈매기
난 원해
난 여길 떠나고 싶어
난 여길 떠나가야 해
내가 아닌 날 버리고
이제는 떠나고 싶어
이제는 떠나가야 해
크라잉넛의 [갈매기] 중에서
※ 「독립운동歌」는 내 마음대로 만든 말이다. 내가 독립을 꿈꾸고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즐겨 들은 음악이다. 「독립운동歌」는 독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때, 나를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