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 운동과 펑크록 그리고 독립
꺼야 꺼야 할 거야
혼자서도 잘 할 거야
예쁜 짓 고운 짓
혼자서도 잘 할 거야
너도 나도 혼자서도
잘해 잘해 잘해
우리 모두 혼자서도
잘해 잘해 잘해
꺼야 꺼야 할 거야
혼자서도 잘 할 거야
꺼야 꺼야 할 거야
혼자서도 잘 할 거야
1994년부터 2001년까지 KBS 2TV에서 방영된 어린이 프로그램 《혼자서도 잘해요》 주제곡 가사다. 87년생인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혼자서도 잘하겠다던 아이는 부모에게 의지하며 사는 어른으로 성장하였고, 다행히 뒤늦게 정신 차리려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어른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 다짐을 잃지 않고자 허락받지 않은 독립을 이루어낸 과정을 이런저런 글로 남기고 있다.
스스로 해내겠다는 자세와 정신은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늘은 역사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뭉친 추축국과 영국, 미국, 프랑스, 중국 등이 뭉친 연합국의 대립으로 규모가 확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으로 1945년 8월 15일에 막을 내렸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사에서 가장 큰 재산과 인명 피해를 낳은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연합국의 승리로 돌아간 전쟁이었지만, 피해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폐허가 된 도시를 다시 예전 모습으로 재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했다. 예산도 부족했고, 물자도 부족했고, 전문 인력도 부족했다. 그리하여 시민들 스스로 고치고 수리하고 만들어서 죽은 도시를 되살리는 DIY(Do It Yourself) 운동이 영국으로부터 시작하여 미국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을 다시 되살리기 위한 자발적인 DIY 운동이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조금 변하기 시작한다. 당시 1차 오일쇼크로 심각한 재정위기를 맞이한 영국은 외환 보유고가 바닥난 상태였으며, 1976년에 IMF(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 금융까지 받는 상황에 이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79년에 영국 최초 여성 수상으로 취임한 마가렛 대처는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경제 정책을 펼쳤다. 법인세와 준조세 같은 세금을 줄이고, 기업이 자유롭게 경영할 수 있도록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했으며, 민영화를 확대하고, 노조를 억압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서민들은 더욱 빈곤해졌고, 불평등은 악화되었으며, 사회 서비스는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마가렛 대처를 ‘철의 여인’이라 부르지만, 누군가는 ‘신자유주의의 마녀’라고 불렀다.
고통 받은 영국 청년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영국 기득권을 향한 그들의 저항과 반항은 음악으로도 표현되었다. 그들은 붉게 염색하고, 모히칸 스타일로 뾰족하게 머리를 세웠으며, 찢어진 청바지와 가죽재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노래라기보다는 괴성에 가까웠고, 제대로 들리지 않는 가사 속에는 온갖 조롱과 독설로 가득했으며, 밴드의 연주는 시끄럽고 단순했으며 코드는 고작 2~3개가 전부였다. 기성세대들은 도무지 들을 수 없고, 신세대들은 열광하는 음악이었다. 펑크록(Punk Rock)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펑크록을 대표하는 영국밴드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유일한 정규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에는 [Anarchy In The U.K], [God Save The Queen]처럼 영국왕실과 영국여왕을 조롱하는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청년들에게 구원자는 없었다. 구원자를 찾거나 원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기성세대들이 짜놓은 사회시스템에 들어가는 걸 거부했다. 펑크록은 엘리트코스를 밟아 전문적으로 음악을 전공한 이들이 만든 음악이 아니다. 조금 어설프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이상하지만 내 멋대로 만든 음악이지만, 그 안에는 피가 끓는 청춘들의 절규가 담겨있다. 이는 곧 DIY 정신의 계승이자,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대안이었다.
훗날 1996년 우리나라에서는 펑크록밴드 크라잉넛의 [말달리자]가 수록된 컴필레이션 앨범 《Our Nation Vol.1》이 발매된다. 홍대 라이브 클럽 <드럭>의 이석문 대표가 기획한 이 앨범은 우리나라 첫 인디앨범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인디(Indie)’란 ‘Independent(독립적인)’에서 따온 말로, 밴드 멤버들이 직접 작사와 작곡은 물론이며 앨범제작부터 유통, 홍보까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1996년은 대형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를 통해 H.O.T.가 데뷔한 해이다. 그 다음해 1997년에는 S.E.S.와 젝스키스가 데뷔하였고, 그 다음해 1998년에는 핑클이 데뷔하였다. 멋지고 예쁜 아이돌 그룹이 공중파 방송을 장악했을 그 무렵, 홍대 앞 작고 어두컴컴한 라이브클럽에서는 인디음악이 태어났다. 이 역시 DIY 정신이 계승이며, 우리나라 옷에 맞춘 새로운 흐름이었다.
오늘날,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IKEA)를 통해 널리 알려진 ‘DIY’라는 말에는 주류사회에 대한 저항과 분노가, 스스로 일어서보려는 도전과 의지가 담겨있다. 나 역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있었다. 부모가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감정은 저항과 분노로 표출되었고, 홀로 일어설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불안은 도전과 의지의 마음가짐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Do It Yourself”를 외쳤다.
‘self’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아, 자신, 본모습으로 해석된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자신의 본모습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혹여나 잠시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독립이다. 독립 역시 누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찾아오거나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DIY 정신을 통해 치열하게 쟁취해내는 것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은 그렇게 시작된다.
♬ 「독립운동歌」 플레이리스트 : 레이지본 - Do It Yourself
하고 싶은 일 생긴 것 같아
엄마에게 물어봐야지
그녀가 자꾸만 보고 싶은데
엄마에게 야단맞겠지
내 사랑도 내 인생도 힘들 때는
나는 평생 엄마 찾아 삼만리 밥말리
우리집 강아지 아이구 내새끼
니가 난 정말 자랑스럽다
우리 아빠는 내게 말하지
나는 이 길로 가고만 싶은데
아빠는 절대 허락 안하지
이거해라 저거해라 저건 절대 하지마라
머리속에 맴돌아 맴돌아
귓가에 맴돌아 이젠 날 냅둬라
꿈꾸며 사는 거야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까
눈치 보며 살지마
떳떳하게 Do It Yourself!
당당하게 사는 거야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까
나의 길을 가겠어
나의 꿈은 소중하니까
레이지본의 [Do It Yourself] 중에서
※ 「독립운동歌」는 내 마음대로 만든 말이다. 내가 독립을 꿈꾸고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즐겨 들은 음악이다. 「독립운동歌」는 독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때, 나를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