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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쁜남자 Aug 29. 2023

오락실을 가보지 않은 아이

착한 아이로 살아온 지난날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내가 생각해도 정말 독특한 아이였다. 흔히 독특한 아이라고 하면 남들이 좀처럼 하지 않는 기행(奇行)을 일삼는 아이를 떠올리기 쉬운데,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흔히 그 나이대에 했을 법한 일들을 하지 않았다.



“엄마, 오락실 가게 500원만 주세요.”


“엄마, 만화방 가게 800원만 주세요.”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오락실을 가려면 500원 정도 필요하고, 만화방을 가려면 800원 정도가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상상으로 써본 말이다. 



그래도 글은 솔직해야 하니까.


아예 오락실과 만화방에 안 가본 건 아니다. 명절이나 제삿날에 친척 형들 따라 몇 번 오락실에 가봤다. 그럼 형들이 게임 한 판 해보라고 돈을 넣어준다. 당연히 게임을 해보지 않았으니 얼마못가 허무하게 끝난다. 이미 ‘GAME OVER’ 되었는데, 난 그것도 모른 채 계속 조작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게임 시작 전 대기화면에 나오는 게임영상 이 지금 내가 플레이하는 거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만화방도 가봤다. 동생 친구의 어머님이 우리 집 근처에서 만화방을 하셨다. 그럼 동생과 함께 만화방에 놀러가겠다고 엄마한테 허락받은 다음, 만화방에 가곤 했다. 그럼 동생 친구 찬스 덕분에 만화책을 공짜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지, 만화책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는 동생이랑 동생 친구와 함께 나가 놀았다. 



잠깐 옆길로 샜다. 오락실과 만화방의 추억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엄마 몰래 오락실이나 만화방에 가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내가 말이야.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몰래 오락실 가서 스트리트 파이터에 열중하느라 해가 진지도 몰랐어.”


“내가 말이야.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 몰래 만화방 가서 드래곤볼을 10권씩 보곤 했어.”



이런 이야기는 어디 가서 학창 시절 추억담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소재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누구나 다 그랬을 테니까. 그런데 왜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 결과, 내가 그저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칭찬 받는 걸 좋아했던 게 아니라 혼나는 걸 싫어했다. 혼나지 않으려면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부모님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면 된다. 특별히 반항을 한다거나 반대의견을 낼 필요가 없다. 그래봤자 나만 손해다. 당시 내가 취한 태도 때문인지 사춘기 시절도 별 마찰 없이 지나갔다. 속칭 부모 속 썪이지 않는 착한 아이가 바로 나였다.



“TV 그만 보고, 이제 방에 들어가서 공부해!”



나는 이 말도 듣기 싫었다. 중학생이 되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덩달아 내 방이 생기면서, 나는 늘 방에 들어가 있었다. 방에 들어가 책 펴놓고 그냥 앉아있었다. 책상에 앉아 딴 생각할 때도 많았고, 문제집 풀다가 졸기도 엄청 졸았다. 아니면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면 집중이 더 잘 된다는 뻥을 치면서 라디오를 틀어놓기도 했다. 눈은 글자를 보고 있지만, 내 귀와 정신은 라디오에 쏠려있었다. 한마디로 공부하는 척만 하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엄마한테 혼나지 않고 나아가 칭찬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그동안 어떻게 키웠는데! 왜 자꾸 엄마 실망시켜!”


“아니,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착하게 살아온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었다고 어릴 적 그 모습이 어디 갈까? 그럴 리 없다. 엄마는 나에게 실망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늘 부모님께 인정받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던 나였다.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괴롭히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착한 아이로 살아오며 부모님을 위해 살아온 지난날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나를 위해 살아보려고 선택한 일이었는데, 우리 부모는 내게 너무나도 화를 내셨다. 부모 속 썩이지 않고 살아온 아들이 갑자기 부모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니 벌어진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 말도 좀 안 듣고, 부모 속도 좀 썩이고, 내 방식대로 사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 정도까지는 화내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인 적도 없을 뿐더러, 부모 역시 그런 내 모습을 본적 없으니, 충분히 당황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깨달았다. 몸만 컸지, 내가 아직 아이라는 걸. 



내가 만약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부모님께 보여야 하는 모습은 착한 척하는 아이의 모습도 아니고 공부하는 척하는 아이의 모습도 아니다. 진짜 보여야 하는 모습은 부모가 하라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부모의 뜻과는 조금 다르더라도 내가 직접 결정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부모의 걱정과는 다르게 나만의 멋진 모습을 보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믿음이 쌓인다. 단순히 “나는 우리 아들 믿어.” 수준의 믿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간의 진실한 믿음이다. 그 믿음이 쌓였을 때, 비로소 부모로부터 독립된 자아로 인정받을 수 있다. 



예쁨 받고 인정받으려는 내 수동적인 삶의 태도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님 인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부모가 생각했던 경로에서 아이가 조금만 벗어나도 경고등이 삐용삐용 울리는 것이다. 부모가 생각하는 경로가 무조건 옳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결국 착한 아이였던 나는 독립적이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했고, 착한 아이를 키웠던 부부는 독립적이지 못한 부모가 되어버린 셈이다. 착한 아이가 마냥 좋은 게 아니다.











♬ 「독립운동歌」 플레이리스트 : 델리스파이스 - 저도 어른이거든요


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 칭찬이 좋아서

말 잘 듣는 아이인 척했던 시간이 많았더랬죠

이젠 세월이 흘러 저도 어른이거든요

하지만 어릴 적 그 모습을 버리진 못했나 봐요


아 변명하려 했지만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이 무슨 소용 있나요

내 감정조차 속여 온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일 뿐일 걸요

그래요 그런 거죠


(중략)


잘하려고 잘해 보려고 내 딴엔 노력한 건데

어쩌다 한번 불평으로

그랬구나 그게 너의 본 모습이었구나

이런 말은 너무해요

세상은 불공평해


델리스파이스의 [저도 어른이거든요] 중에서








※ 「독립운동歌」란? : 내가 독립을 꿈꾸면서 즐겨 들었던 음악이며, 「독립운동歌」는 내 마음대로 지은 이름이다. 마치 군인들이 군가를 들으며 국가관·안보관·대적관을 바로 알고, 나라를 지켰던 것처럼 말이다. 독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흔들릴 때마다 이 노래들이 내게 용기와 위로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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