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프레스로 가슴 운동하면서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제가 유치원을 다닐 때 집에 역기가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그 운동기구를 벤치 프레스라고 부르지, 그 시절에는 그냥 역기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당연히 역기벤치는 아버지께서 사용하시는 운동기구였습니다. 어린 저에게는 잠시 앉아있거나 누워있기 좋은 놀이기구일 뿐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퇴근 후, 저녁을 드시기 전에 매일매일 운동을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벤치에 누워 역기를 올렸다 내렸다 하시는 모습을 보며 ‘우와~ 저 무거운 걸 드시네.’ 정도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제가 무슨 깊이 있는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아버지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그토록 열심히 운동하셨던 까닭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영진약품이라는 회사에 다니셨습니다. 맞습니다. 배우 마동석이 손가락으로 V를 하고 있는 모습이 붙어있는 자양강장제 드링크 영진 구론산 바몬드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렇게 디자인이 바뀐 건 최근 일이고, 30년 전만해도 그냥 평범하고 심심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여하튼 아버지께서는 영진약품에 다니시면서 드링크를 약국에 납품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약국에 방문하셨을 때, 드링크가 들어있는 커다란 갈색 박스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보통 그 한 박스에 유리병으로 된 드링크가 100병 정도 들어있습니다. 제품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당시 드링크 용량은 대체로 120ml 정도고, 무게로는 210g 정도 되었습니다. (요즘에 파는 제품은 150ml로 용량이 증가되었습니다.) 그렇게 100병이 들어있으니 총 무게는 21kg 정도 되는 겁니다. 쌀 한 포대랑 맞먹는 무게인 셈이죠.
초등학생 시절, 아빠가 일하는 곳에 방문하여 감상문을 쓰는 여름방학 숙제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직접 운전하시는 화물차 옆에 타고, 함께 약국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날 아버지께서 한 번에 드링크 2박스를 등에 짊어지고 약국에 옮기시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운전하고 드링크 옮기고, 운전하고 드링크 옮기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더운 여름날에 말이죠.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아버지께서 그토록 열심히 운동하셨던 이유를 뒤늦게 알았습니다. 사진 속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보면 그렇게 체격이 크신 편은 아니셨습니다. 작은 체격이셨지만 그 무거운 드링크를 옮기기 위해 체력을 키우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집안의 가장으로 아내와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건강한 몸을 유지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역기뿐만 아니라 다른 운동도 꾸준히 하셨습니다. 퇴근 후 날씨가 좋은 날에는 저는 아버지를 따라 대전 유등천 강변을 뛰었습니다. 아~ 아니군요. 추운 겨울에도 뛰었습니다.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달리기를 하면 귀가 땡땡하게 업니다.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숨을 고를 때면, 아버지께서 목장갑을 낀 두 손으로 땡땡 언 제 양쪽 귀를 막 비벼주시곤 했습니다. 그때 얼마나 아프던지.
주말에는 가족끼리 등산을 즐겼습니다. 가장 많이 갔던 산은 대전 보문산이고, 그 외에도 계족산, 장태산, 식장산, 구봉산 등을 올랐습니다. 산에 가는 날이면 아버지께서는 아침부터 카메라 필름을 교체하며 즐거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날에는 삼각대까지 가지고 산에 오르셨죠. 그 덕분에 제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산에 찍은 사진이 많습니다.
부모님을 존경한다는 말이 살짝 어색하고 부끄럽긴 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누구 시키지 않아도 꾸준히 운동하시고, 체력 관리에 힘쓰셨던 모습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며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들여왔습니다. 한 번도 저한테 운동하라고 강요하신 적 없는데, 스스로 아버지에게 배웠습니다. 몸소 실천하시며 본보기가 되어주셨으니까요.
벤치 프레스를 하며
오늘도 딴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