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어때서

스웨덴에서 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

by 초록별고래


나는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지만,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교육이 공부를 즐기고, 좋아하게 만드는 시스템도 물론 아니지만, 그럼에도 언어, 수학, 과학 등 특정 과목에 관심을 보이는 '공부가 잘 맞는' 사람도 더러 있는데, 나는 그런 타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그냥 해야 하니까, 공부를 안 하면 이 나라에서 먹고살기 힘드니까, 대학을 가야 한다고 어른들이 말하니까 시키는 것을 열심히 했고, 그렇게 중간 이상의 성적은 늘 받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정규과정 16년을 한국에서 마쳤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그렇듯 이 길이 나한테 맞든 아니든 내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직장을 구했고, 그걸로 먹고 살아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35년 동안 내가 진짜 원하고 하고 싶어서 했던 선택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 걱정 끼쳐가며 간 남미여행,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선택해서 한 결혼 정도를 제외하면)


스웨덴에서 '대학원'이라는 선택은 나에게 그동안 없었던 '진짜 선택'을 한 순간이었다.


남들 다 하니까 해야 할 것 같아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어른들의 잔소리에 이끌려하는 것이 아닌 진짜 내가 원하고 하고 싶어서 한 진짜 나만의 선택.


하지만 이런 진짜 선택은 내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인격체, 즉 성인이었고, 이만큼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20살이었어도, 27살이었어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거다.




우리 반 18명의 반 친구들 중 나는 3번째로 나이가 많다.

대부분 20대 중 후반, 많아도 30대 초반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나와 15살 이상 차이 나는 조카뻘 친구들도 꽤 있다.


그런 아이들과 비교해 나는 AI 등 최신 디바이스 사용에 대한 정보도 느리고, 물론 암기력도 떨어질 테고, 체력도 부족하겠지만,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사회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것 하나는 굉장히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10년이 넘는 교사로서의 경험과 그것으로부터 배운 사회적 경험. 그것은 나를 조금 더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서 얻은 그들보다 많은 경험들은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에도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문제점을 심도 있게 이해해서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보다 더 새로운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을 수 있었다.


불평등 교육, 혹은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 인권 등의 주제를 생각할 때, 나는 그동안 교사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한국으로 이민 온 외국인 아이들, 그들의 가족들의 문제,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의 이민 생활로 인한 경험으로부터는 이민자로서 외국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환경의 어려움, 그들의 겪는 문제점을 완전히 공감할 수 있다.

또한 여성으로서 겪는 불평등, 즉 남편을 따라 이주해 온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남성들보다 직업을 기회를 얻기 어려운 점, 의사소통의 문제, 문화적 차이에서 나타나는 어려움 등 또한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공부는 다 때가 있다고는 하지만, 혹은 어떤 분야에서는, 특히 이렇게 깊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어쩌면 젊고 빠릿빠릿한 두뇌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보다 좀 더 많은 경험과 공감과 이해도가 더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30대 후반이 되어서 다시 시작한 공부에 대한 매리트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던 이유는 물론,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나 같은 이민자에게 주는 '공평한 교육의 기회'이다.


스웨덴 교육은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공평하게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도 물론이거니와 '나이'에 대한 것도 포함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그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고등교육, 그리고 직업적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보장한다"라고 명확하게 명시해 두고 있다.

https://www.government.se/government-of-sweden/ministry-of-education-and-research/


실제로 스웨덴에서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혹은 직업을 잃거나 다른 직업을 구할 때에도 재교육의 기회를 찾기에 어려움이 없고, 회사와 이야기만 잘 된다면 직장을 다니면서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많은 유럽의 국가들이 재정적인 이유로 교육에 대한 복지에 덜 투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어쩌면 스웨덴도 이러한 보수적 스텐스를 취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좋은 복지 제도를 나 포함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다는 점이 감사하다.




스웨덴에 살기 시작하면서 지난 4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내 나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아마 한국에 있었으면 '나이가 많아서' '이 나이 먹고 뭐 하러' '이제 와서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을 매 순간 했을 것 같다)


오히려 스웨덴에도 k-culture가 더욱 붐을 일으키면서 내 실제 나이를 아는 모든 나의 지인들은,

"코리안은 다 피부가 좋다"

"코피안은 옷도 잘 입고, 네가 가진 아이템은 다 귀엽다"

"너희에겐 어려 보이는 특별한 gene이 있는 것 같다. 아마 김치 때문이냐"

등등 온갖 말도 안 되는 칭찬들로 종종 쑥스럽고 민망할 때가 많다.


'나이 듦'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시선들.

오히려 그것에서 강점을 찾아내려는 노력들.


내가 4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행복하게 이곳에서 공부하고, 하루하루 새로운 지식으로 가슴 설렐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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