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화래진 Dec 19. 2019

나는 너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어떤 관계든 그렇지만 너무 가까우면 데인다. 너무 멀면 서운하고. 혹은 서운해하고.



 나에게는 누구나 그렇듯 친구들이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친구, 같은 일을 하는 친구, 가끔 만나서 밥 먹는 친구, 어쩌다가 보고 싶은 친구. 나는 오늘 같은 일을 하는 친구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너무 가까워졌다 싶으면 멀리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나도 이기적이다. 이 성질은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잘 나타난다. 나는 방금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몸이 괜찮냐는 전화였다. 감기 몸살 탓에 몇 날 며칠을 집에만 있던 나에게 오후 11시쯤 전화가 온 것이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피곤이 몰려오던 차였고 이게 정말 날 위한 전화가 맞는지 의심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운함도 밀려왔다. 친구는 내게 뒤이어 말을 이었다. 아니 내가 회사에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놈이 쓰레기네'라고 말할 타이밍에서 한숨만 나왔다. 머리가 울리고 속이 메스꺼웠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친구가 왜 그러냐며 내게 물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분명 내가 아픈 걸 아는 거 같은데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화룡정점으로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나 1월 3,4,5일에 제주도가. 말했었지?'

'어, 잘 다녀와'


'왜 이렇게 영혼이 없어?'

'아니야. 일하느라 피곤할 텐데 쉬어, 고생했어'


 나의 마지막 말에 응~이라고 한 친구는 드디어 전화를 끊었다. 너는 이상함을 못 느꼈겠지만 나는 몹시 이상했다. 친구는 오전부터 힘들다며 어쩌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고생이겠네, 힘들겠네를 연발하다가 몸살로 지친 내가 할 말은 아니라는 생각에 답장하던 걸 넣어뒀다. 한마디로 읽고 씹었다. 늘 주변을 잘 챙겨주고 가끔씩 서프라이즈로 선물을 줘서 사람을 감동시키던 내 친구는 온데 없고 아픈 내게 하소연만 하는 사람만 남았다. 너는 내게 뭔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나를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좋은 점은 무궁무진하지만 나의 상황을 배려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부분이 가끔 너무 힘들게 했다.


 그럴 때마다 극단적인 나로서는 멀어지고 싶다. 멀어지고 있는데도 더 멀어지고 싶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언젠가 본 책에서 그랬다. 그 사람은 나에게 이미 역할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너무 내치지 말고 고생했다고 보듬어 주라고. 내가 친구에게 지금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는 '거리를 두는 것'이다. 다시 내가 너를 만날 수 있을 때 우리는 어제처럼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