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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Apr 20. 2020

달콤한 말이 나를 속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넓은 호수와도 같다.

해가 뜨고 달이 져도 잔잔하지만

작고 날카로운 돌멩이 하나에는 몇 겹의 파도가 일렁이니.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위로할 줄 아는 사람,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


 나는 한 번도 위로다운 말을 받은 적이 없다. 위로를 듣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 이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지, 말뿐인지. 고로 위로의 말은 화자를 위한 말이지 청자를 위함이 아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는 침묵이고 나 또한 그것에 위안을 얻는다.




 대학 졸업도 전에 취업한 회사에서 처음 위로를 받았다. 첫 입사이고 쟁쟁한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나는 하나의 미생 같았다. 나만 준비가 안된 것 같았고 나만 도태되는 듯했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는 나와는 달리 머리가 좋은 듯했다.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동기 언니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잘하고 있다고, 잘 해내고 있다고. 나도 모르게 의지하고 실수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게 말뿐이었다는 사실을 얼마 안 되어 온몸으로 깨달았다.


 팀장님과 다른 동기들이랑 점심을 먹었다. 그날은 팀 배정이 끝나고 오전에 업무 분담을 맡은 직후였다. 친하게 지내던 팀장님과 함께 일하게 되었고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잘 해내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마음에 잔뜩 긴장했다. 평소 팀장님을 잘 따르던 동기 언니가 나를 보자마자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너 팀장님 욕보이지 말고 잘해, 알겠어?"

"괜히 실수해서 팀장님 난처하게 하지 말라고."

"팀장님이 뭐가 필요한지 빨리빨리 알아채고 도와드리란 말이야."


 매번 실수할 때마다 친절하게 괜찮다고 한 동기 언니는 팀장님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평소 내 실수를 한심하다고 느꼈는지 삼연타를 던졌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고 수저를 든 손이 허공에 멈췄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머물렀다. 나의 실수가 약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나는 덤벙대고 눈치가 없는 사람이 되었고, 팀장님의 신뢰를 얻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후 습관처럼 아쉬운 이야기는 되도록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힘들다거나 어렵다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없앴다. 나는 평소보다는 버벅거렸지만 마음은 한결 편했다. 대신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나중에 터져버리고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져 나를 잠식시켰다. 한숨조차 주변을 살피며 내뱉는 사람이 되었다. 내 아쉬움이 약점이 될까 봐 가족에게조차 숨기고 오롯이 혼자 감내했다. 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힘듦 또한 내 몫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참다 참다가 못 버티면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상대의 위로는 매번 날 더 상처 받게 했다. 침묵보다 나은 말이 아니라면 제발 그 입을 다물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내 기도는 항상 한 발 늦었고 화살을 맞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어깨가 늘어졌다.


"너만 힘든 게 아니야 남들 다 그렇게 살아"

"네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야 나는~"

"아 진짜? 헐.. 야 근데 내 친구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대뜸 우리 집에 와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다던지 집으로 선물을 잔뜩 보내주는 친구도 있었고, 방구석에서 울고 있으면 그 울음을 다 받아주던 친구도 있었다. 잠깐 나오라며 술 한잔 하자는 사람도, 맞은편에서 내가 한숨을 쉬든 할 말을 잃든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던 사람도 있었다.


 이런 존재들로부터 위로를 배웠다.  또한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바로  한잔 하자고 말할  있는 여유도 생겼다. 수백 개의 단어, 수천 개의 문장보다  사람의 존재로 위안을 얻는다. 위로는 절대 말뿐이 아니라는  나의 존재들로부터 배웠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상대를 위로해   없다면 순간의 달콤한 말이 아닌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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