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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May 09. 2020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입버릇처럼 괜찮다고 말한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 아닌 이상 대수롭지 않다. 음식을 정하는 일 말고는 남들에게 굉장히 관대한 편이다. 사람들의 실수도 나는 괜찮고 취향도 성격도 내게는 다 괜찮다. 그런 내가 내 일에는 엄격해지곤 한다. 내가 하는 건 괜찮지 않다. 내 실수는 물론이거니와 단점, 성적, 성격, 모든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너는 괜찮지만 나는 괜찮지 않다.

출저 booooooom.com

  난 융통성이 없는 편이다. 사람 인의 한자 조차도 서로 맞대어 있는 형상인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 자체를 끔찍이 어려워한다. 기대는 것도 나는 못하겠다. 의지를 하라니 차라리 나 혼자 끙끙 앓다가 죽는 게 편하다.


 어쩌면 가족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다. 삼남매의 첫째로 태어나서 부모님이 나를 보는 시간보다 동생들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혼자 하는 걸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라고 살아서 지금은 도움을 받아야 할 때조차 상황을 피하고 있다. 동생들은 잘만 부모님께 부탁하고 도움을 청하는데 나는 대학 등록금을 마지막으로 무언가 부탁한 적이 없다. 그마저도 국가장학금이니 성적장학금이니 해서 등록금이 40만 원 정도 나왔었다. 친구가 하는 말이 대부분의 첫째들은 그렇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해도 해도 너무하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을 때도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 분명 혼자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나만 바보가 된 느낌이다. 제일 최악인 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했을 때 상대의 반응이 '이런 것도 몰라?'이다. 조언보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더 궁금한 사람들 덕분에 나는 더더욱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이 어렵다.


 그 사람들이 내게 부끄러움을 주는 건 괜찮지만 그런 질문을 한 나는 괜찮지 않다. 하루 종일 왜 내가 그렇게 쉬운 걸 물어봤을까부터 시작해서 대체 뭘 몰라야 하는 건지도 몰라 한참을 괴로워한다. 나도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의지하려고 했을 때의 불편함이 떠오른다. 나는 그 상황을  피하고 나는 네가 의지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줄 때가 생각나 그마저도 멈춘다.

출저 booooooom.com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요즘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매번 괜찮지가 않네...라고 생각할 때 즈음 음악 차트에 있는 노래 제목을 보았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퍽퍽한 성격과 팍팍한 삶에 괜찮지 않은 내게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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