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화래진 Apr 10. 2021

스물아홉의 권태


나는 무료했다. 

그래서 따분해했고 

모든 것에 시들해졌다. 

단, 새로운 것을 제외하고.




 불안정했던 모든 것들이 안정을 찾았다. 마냥 질풍노도의 시절일 것만 같았던 나의 성정도, 인간관계도, 상황도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나의 태도가 달라졌다. 쉽게 질려하는 탓에 항상 변화 속에 나를 던지고 보았다. 역시나 처음엔 어렵고 무섭지만 재밌다. 그 이후에 적응하고 나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다. 적응하는 족족 재미가 없다고 판단하면 그냥 다 놓아버렸다. 사람들도 잃었고 직장도 옮겼다. 상황이 계속 변하다 보니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맞추기 편했다. 그렇게 내 일과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우물 안 개구리 같지만 꽤나 깊은 우물이라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부담스럽다. 그러나 내가 혼자이고 싶지 않을 때 새로운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니 또 이런 즐거움이 있나 싶다. 


지루할 땐 나의 첫 오빠였던 키아누리브스를 보곤 한다. 그다음엔 콘스탄틴...
그다음 오빠였던 레오. 오빠 왜 이젠 오빠가 아닌 거죠..?


 내가 변했다고 느꼈지만 사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어느 날 문득 스쳐간 친구들의 말들이 머릿속에 박혔다. 넌 왜 나랑만 놀지 않는 건지 궁금하다는 친구들의 말이 떠올랐다. 어린 나는 필터가 없었기 때문에 너 한 명이랑 노는 건 좀 질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냥 싹수가 없었던 것 같다. 난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게 편한 쪽이었고, 학창 시절에는 짝이 꼭 정해지기 때문에 그중 날 좋아하는 친구와 다녔고 그게 다였다. 큰 의미가 없었다. 내 친구들은 다른 반에 있었고 학급에서는 꼭 짝이 있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내 짝꿍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혼자 다니면 날 이상하게 생각했고 다른 친구들과 친해질랑 하면 나를 데려가는 일들이 있었다. 난 그날그날 내가 놀고 싶은 친구가 달랐다. 아니 매 시간마다 바뀌었다. 그때마다 짝꿍은 혼자 있었다. 그러더니 짝꿍도 다른 친구들과 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딜 갈 때면 항상 함께 다녔던 것 같다. 


 난 어쩌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남으로서 나의 권태를 또 다른 즐거움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왜냐면 권태를 느껴야만 사람이 재밌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누가 불러도 모른척하는 집순이니까. 집에만 있으면 쓰레기가 그렇게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인간은 어쩌면 쓰레기만 만드는 존재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와식생활을 하니까. 앞에 누가 있건 옆에서 뭐라 하던 관심도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력 없이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들에 대해 반감이 들었는데, 지금은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 남을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가는 거지 라는 말은 무책임하다고까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내가 그러고 있다. 이렇게 갑자기 모든 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시들시들해질 줄 알았으면 관계에 대한 어떤 고민도 하지 않는 게 나을뻔했다. 그냥 되는대로 살았어도 지금보다 친구는 곱절로 많았을 것이다. 괜히 나 혼자 더러운 꼴 다 보고 진지했던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과거와 함께 스쳐 지나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불안은 어디로부터 시작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