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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Nov 13. 2021

가끔은 내가 너무 별로다.

차마 싫다고는 표현하지 못하겠어서

 

못났다.



 못났다는 말이 적절한 것 같다. 말하는 꼬락서니도 하는 생각도 전부 맘에 안 들 때가 있다. 나 자신이. 나는 원래 후회를 잘 안 하는데 그날은 너무 후회가 된다. 나는 종종 멀리 가기 위해 앞에 장애물을 피하곤 하는데 그 마저도 내가 치사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멀리 가기 위한 건 핑계고 단지 지금 쉬고 싶어서 나를 합리화하는 건 아닌지 수도 없이 되뇐다. 생각을 멈추고자 생각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화살이 결국 나를 관통하고 지나간다. 아, 내가 왜 이러지.


 부지런히 체력 관리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특히나 체력이 좋지 않아서 생활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어디서든지 고장이 나곤 한다. 잠은 잘 잤는지, 먹은 음식이 부실하진 않았는지, 운동은 했는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건 아닌지, 나와 노는 시간이 짧았는지, 마지막으로 사람을 너무 만나 에너지를 소진한 건 아닌지 체크해본다. 


 친구들과 노느라 잠도 못 잤고 체력도 바닥났다. 과제를 못하니 수업에 들어갈 수 없었다. 시간관리를 못한 내 탓이니 내가 미웠다. 나는 그대로인데 남들이 나를 앞서간다는 생각이 들어 초조하고 불안했다. 경쟁하지 말자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나는 또 보이지 않는 출발선에서 지는 게 두려워 시작조차 못하고, 다른 이들을 보면서 열등감에 빠져서는 자기 연민과 자기혐오를 한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는 절망만 생각해야 제 맛


 빨간 머리 앤이 말했던 절망의 구렁텅이가 지하 10154310층쯤 됐던가.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릴 때쯤 정신이 돌아온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성격을 마주할 때 나는 다시 출발선을 지우곤 한다. 수첩 피고 내 체크리스트부터 확인한다. 음식은 자극적이었고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해서 자괴감이 들었다. 남과 시간을 보내느라 자연스럽게 나와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도 있었다. 체크리스트에는 운동 칸 외에 모든 것이 해당된다. 문제를 알았으니 실천을 한다. 하루 이틀 숙면과 밍밍한 음식을 먹으며 나와 신명 나게 놀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책을 열고 읽으면서 생각을 비우고 지나간 모든 대화를 잊는다. 내가 남의 말에 아무 타격이 없는 것처럼 남 또한 그렇겠거니 생각하며 머리를 비운다. 나의 좀스러웠던 행동들은 반성하고, 여유가 있을 때 사람을 만나자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사람은 촛불과 같아서 너무 멀어서도 안되고 가까워져서도 안된다고 또 뇌에 새기고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말까지 다시 꺼내서 읽고 넣어둔다. 모든 사람들은 어떤 것도 그럴 수 있으며, 나 또한 모든 일에 의연해지자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과거에도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




 이렇게 일련의 나의 생각 루틴을 마치면 난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와 과제 마감을 준비한다. 비록 이번엔 위염에 걸려서 건강이 바로 회복될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 것조차도 내게는 큰 힘이 된다. 나는 나를 정말 좋아한다. 그런 내가 혹여나 미워질 땐 그걸 부정하고자 남의 단점을 극대화시켜 내게 피해를 입힌 거라고 나를 속일 때가 있다. 상대가 날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다다르면 나는 상처 입고 싶지 않아 인간은 다 별로라고 욕한다. 그렇게 주변을 잠시나마 비우면 그냥 그날의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 제일 먼저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 쉴 때가 됐네.. 내가 많이 지쳤나 보다.


 항상 적당히가 없다. 재밌으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서 모든 일을 제쳐두는 습성이 있다. 물론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하고 있는 일을 잘하고 싶은 내 욕심을 내가 좀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종강까지는 머리를 비우고 몸도 비우고 삶을 좀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내가 다시 못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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