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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May 01. 2024

어떤 부모로 남을 것인가, 어떤 부모 곁에 남고 싶은가

오랜만에 결혼식에서 만나 밤새 수다를 나누던 친구는 깊은 밤이 되자 묵혀두었던 속얘기를 들려주었다. 엄마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난 후였다. 


실은 본인의 동생도 엄마와 연을 끊기로 했다는 것이다. 편애로 인해 고통받던 동생은 이제야 자기 삶을 찾은 것 같다며 여느 때보다 홀가분해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친구는 이혼가정에서 자랐다. 무던한 성격이던 그 애는 뿔뿔이 흩어진 가족공동체에서 기꺼이 허브역할을 자청하며 자라왔다. 서로를 미워하는 엄마와 아버지, 엄마를 미워하는 동생과도 잘 소통했다.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고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만나고 위로를 전하며 지내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폐암 4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애의 여린 어깨에는 더 큰 짐이 얹혔다. 착한 딸로서 아버지의 병원에 동행하는 것은 물론 병원비도 보태고, 동생에게는 차 구입비를 보태주고, 엄마에게는 생활비를 더해줬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자 노력하는 중이지만 친구의 어머니는 온전히 자신의 편이 되지 않는 딸에게 서운함을 토로했고, 동생은 엄마로부터 벗어나기를 종용했다. 아버지는 어떤 조언도 하지 못할 만큼 나약해졌다. 


세 사람의 한가운데 서 있는 친구는 매우 피로해 보였다. 모든 관계를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라 했다. 덤덤히 자신이 처한 상황을 고백하던 친구는 부모가 어릴 적 자신에게 해주지 않던 것을 자신에게 바란다고 했다. 경제적 지원이나, 감정의 버팀목, 보살핌 등에 대한 것들 말이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털어놓은 이야기이지만 그 말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차마 친구에게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미웠다. 그 애의 부모님이. 그리고 이해했다. 엄마를 떠난 그 애의 동생을.. 가여웠다. 부모도 동생도 놓지 못한 채 가운데 서 있는 그 애가. 성인이 된 자식이 부모라는 둥지를 떠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자식에 대한 기대가 너무도 큰 것 같다. 특히 경험상 자라는 동안 지원을 많이 해주지 못한 부모일수록 되려 자식에게 바라는 바가 많은 것 같아 씁쓸하다. 그저 낳아 키워준 것만으로 은혜를 바라기엔 세상은 이미 전래동화가 아니다. 


그저 너무 모든 짐을 스스로 지려 하지 말라고 어깨를 도닥이는 수밖에.. 너는 네 부모의 부모가 아님을 자각하라고 일러주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떤 부모로 남을 것인가. 나는 어떤 부모 곁에 남고 싶은가. 

개인화된 세상에서 앞으로 부모와 자식 관계는 전처럼 돈독하지도 영원히 서로를 옭아맬 수단으로 쓰이지도 않을 것이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부모 자식 사이에도 'Give and Take'는 존재한다. 'Give'는 경제적인 대물림의 의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양육기간 동안 얼마나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었는지에 대한 가치가 더 크게 작용한다. 


비옥한 땅에서 나무의 뿌리가 견고하게 자리 잡는 이치를 생각하면 거북할 비유도 아니다. 모두가 콘크리트 틈새 피어나는 민들레가 될 필요는 없다. 민들레가 될 것을 강요할 자격도 없다. 울창한 나무를 곁에 두고 싶다면 스스로 비옥한 땅을 일구는 일이 먼저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존재로서 각자 꽃을 피워나가면 그뿐.


그러므로 자식이 곁에 남고 싶은 부모로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끝없이 성찰하지 않고는 자식의 뿌리를 움켜쥐고 있는 꼴이 되기에.. 


친구는 자신도 그런 부모가 될까 봐 아이 낳는 일이 꺼려진다고 했다. 굳이 자신처럼 힘든 존재를 이 세상에 불러내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든다고도 했다. 나는 아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지만 지금 그 애가 처한 상황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8년 만에 만난 그 애, 언젠가 다음에 만날 때는 조금 더 홀가분한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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