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서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헬스장으로 향한다. 아이의 습관달력 옆에 내 것도 마련해 운동한 날마다 스마일 스티커를 붙인다.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아이가 등교하는 날이면 모두 웃는 얼굴로 채워져 있다. 어린애처럼 네모칸 안에 알록달록 스티커가 가득 차는 모습을 보면 왜 그리 뿌듯한지.
다시 초등학생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원래 내 습관달력은 아이 눈에 보이지 않게 냉장고 옆에 붙여두었었다. 가족 눈에 띄지 않게 계획표를 숨겨두니 습관을 잡기에 타협할 일이 많았다. '어제 늦게 자서 피곤하니까. 오늘은 바쁘니까. 내일은 외출할 일이 있으니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운동을 한 달에 서너 번 할까 말까였다.
아이에게는 매일 해야 할 습관에 대해 강조하면서 정작 나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 든 셈이다. 그래서 배수의 진을 치기로 했다. 아이 달력 옆에 내 것도 붙여버린 것이다. 입으로만 시키는 엄마가 될 수는 없으니 꼬박꼬박 루틴을 지키게 됐다. 아이가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설 때, 나도 운동화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몸이 찌뿌둥하고, 만사가 귀찮은 날에도 아이는 학교에 가니까 다른 핑곗거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운동을 시작한 지 석 달 차인 지금, 스마트 워치에 차곡차곡 남는 운동기록은 내게 남다른 감회로 다가온다. 달력을 보니 작년 이맘때 봄나들이 계획을 짜놓고 응급실에 실려간 기록이 있었다. 작년과 올해의 오늘 이렇게 다르다니.. 병원 로비에서 아이와 만나 고작 편의점 간식 사주는 것으로 퉁쳐야 했던 지난 어린이날을 기억한다. 링거를 주렁주렁 단 채, 환자복 걸친 푸석한 얼굴의 엄마를 아이는 아직도 기억할까. 그런 모습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다면 좋겠다.
올해 들어 아직 병원에 간 일이 없으니 이 정도면 매우 선방한 한 해이다. 이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먹는 것도 가려 먹는다. 원래 나는 알아주는 초딩입맛이다. 하루종일 과자로 끼니를 때울 수도 있고, 빵과 떡, 면이라면 언제나 오케이 밥 먹고 난 뒤에는 달달한 디저트와 커피도 필수였다. 나의 식습관이 만성염증을 유발한다는 걸 알면서도 고치기 어려웠다. 퇴원하고 나면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배달음식과 간식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또 아팠다. 잦은 병원신세가 식습관 때문인지, 수술 후유증인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입원을 계기로 나는 변화를 선택했다.
아픈 엄마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열망은 나를 기꺼이 움직이게 했다. 매일 아침 산책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찾아먹기 시작했다. 간식의 유혹에 넘어갈지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은 결국 삶을 정갈하게 가꾸어나가는 길임을 자각하려 노력했다. 나를 위해서였다면 아마 그렇게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몸이 원하는 족족 다 갖다 먹이고, 더 불어난 몸을 보며 한숨 쉬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곁을 지키는 두 사람을 떠올렸다. 남편과 딸, 그들에게 더 이상 걱정 끼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노력하는 건 너무나도 쉽게 포기할 수 있었지만, 그들을 위해 건강해지겠다는 약속은 외면하기 힘든 소망이었다. 진심으로 나아지고 싶었고, 그래서 노력했다. 항생제와 해열제 없이 지나온 몇 개월의 시간이 내 노력을 증명해 주는 듯하다.
아이를 위해 나를 살리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비밀이다. 존재에 이유를 더해 구태여 아이에게 불필요한 마음의 짐을 지우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 혼자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너를 살리려 나를 살리고 있구나'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귀한 인연인지.. 비록 딸의 눈에는 보드게임하다가도 진심으로 토라져버리는 철딱서니 없는 엄마일지도 모르지만 아이가 잠든 밤이면 나는 이토록 사랑으로 충만한 엄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