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올해로 만 8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작년은 초등학생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에 감격하느라 마음이 바빠 정신없이 보냈는데, 눈 떠보니 어느새 아이는 한 학년 훌쩍 진급해 버렸다. 키도 부쩍 자라고, 짱구 부럽지 않던 볼태기도 나날이 갸름해지고 있다. 5등신 소니엔젤 비율로 내 심장을 녹였던 그 아이의 모습은 이제 정말로 희미해졌다. 요즘 핸드폰 사진첩을 보면 스크롤을 꽤 내려도 딸의 사진을 찾기가 어렵다. 막 돋아나기 시작한 내 흰머리 찾듯 속속들이 뒤적여야 하나쯤 시야에 들어온다. 그나마도 멀쩡하게 잘 나온 컷은 없다. 대개 걸어가는 뒷모습이거나,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슬며시 카메라를 들다 걸려서 서늘하게 흘겨보는 표정이다. 요즘에는 노려보는 것에서 나아가 몰래 찍은 사진을 삭제했는지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네가 얼마나 빨리 크고 있는지 아느냐고, 나중에 8살의 네가 보고 싶어 지면 난 어떡하느냐고, 우는 시늉을 해봐도 얄짤없이 단호하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사진 찍으면 범죄인 거 몰라?" 게다가 맞는 말까지 척척 읊어대니 기가 차지만 딱히 반박할 말을 못 찾고, 괜히 나도 한 번 흘겨볼 뿐.
그럼에도 아직 아이다운 귀여운 모습은 곳곳에 남아있다. 엄마의 관심이 고플 때면 슬금슬금 다가와 고양이처럼 겨드랑이에 고개를 들이밀고 또랑 한 눈망울을 빛낸다. 그 눈빛엔 '엄마,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배기겠니?' 하는 거만함도 묻어있다. 제 기분 내키면 팬티를 내리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푼수도 잘 떤다. 아기때마냥 입꼬리 옆까지 흘러내리던 볼살은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베이글마냥 땡글, 토실한 턱 선을 조물딱 거리는 건 아직 허락되는 스킨십이라 만질 때마다 귀하다. 정수리에 코를 대고 숨을 한껏 들이마셔도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난다. 남자애들은 안 그렇다던데 다행이다. 가끔 기분이 최고치에 달할 때면 날 향해 우다다다 달려오곤 하는데, 그럴 땐 진심으로 가드를 먼저 올리게 된다. 제 덩치를 모르는 채 철없이 덤벼드는 레트리버가 연상되는 돌진이다. 그 묵직한 충격에 순간 욱, 하는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예뻐도 뼈마디는 쑤신다. 가끔은 어릴 적 사진처럼 안아달라고 조르는데 그럴 때면 코어에 힘을 바짝 주지 않고서는 번쩍 들어 올려 버텨내기가 힘들다. 거울 앞으로 가서 보면 송아지만 한 딸이 내게 매달려 즐거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물론 나는 어깨랑 허리가 아파 죽겠고.. 그럼에도 아직은 나보다 작은 아이를 들어 올릴 수 있음에 그것마저도 다행이다. 이렇게 '아기 같은 모습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싶은 날들이 많아지면서 사진으로도 이 아이를 붙잡아둘 수 없다면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빅토리 노트>, 전에 김하나, 이옥선 작가의 책을 본 적이 있다. 두 사람은 모녀사이인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5년 동안 썼던 육아일기를 딸이 스무 살 됐을 때 선물했단다. 김하나 작가님이 진행하는 여둘톡 팟캐스트에 두 분이 출연한 에피소드를 들으니 이옥선 작가님이 너무나 대단하고 멋있어서, 또 김하나 작가님이 부러워서 듣는 내내 입가엔 미소를 지었으면서도 눈가는 촉촉했더랬다. 누군가 나를 애정 어린 눈길로 관찰해 온 기록이 남아있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건강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판타지보다도 더 환상적으로 느껴졌다. <빅토리 노트>를 처음 읽었을 때 이미 딸은 유치원 졸업반이었으므로 늦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틀려먹었다고. 아마 난 딸에게 그런 기록을 선물하지 못할 거라고. 그런 멋진 엄마는 되지 못할 거라고 단정 지어버렸다. 딸의 5살은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또 몇 년을 보내고, 오늘이 된 거다.
그렇게 단정 지었으면 미련 갖지나 말지, 내 속은 계속 시끄러웠다. 사라져 가는 딸의 말캉함이 아까워서. 점점 갸름해지는 이 아이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싶어서. 겨울방학과 이어진 봄방학 내내 붙어있느라 아주 지겨워 죽겠었는데도 개학 첫날부터 또 마음이 애틋해서 벌써 그리웠다. 새 신발을 신고, 짧게 '안녕'하고 팔랑팔랑 현관을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결심했다. 지금이라도 쓰기로. 8살의 육아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 5년쯤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글로 옮기면 그때쯤 아이의 가슴은 봉긋 솟아있을까. 사춘기 초입에서 엄마의 눈을 더 이상 마주치지 않으려 할까. 그런 날들이 예정되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각오해야지. 외로워지는 날마다 바쁘게 너를 기록해야지. 나로부터 멀어져 가는 너를. 그 시간은 얼마나 달콤하고도 쌉싸름할까.
그런 날을 기다리면서도 또 미룰 수 있다면 미루고 싶다. 하지만 인생사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지.
아이에게 늘 다정하고 현명한 엄마이고 싶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찌질한 엄마이기에 훗날 어른이 된 딸이 '엄마가 밉다'고 말하는 날(모녀관계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언젠가 딸도 내게 원망을 표현하는 날이 올 것만 같다. 그 날이 온다면 내 엄마처럼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싶지는 않다)에 입으로 내뱉는 가벼운 변명 대신, 켜켜이 쌓인 글을 내밀고 싶다.
너의 뒤에서 이렇게 담고 있었다고, 너의 손톱과 발톱을 깎는 일도 내겐 지겨운 기쁨이었다고, 목욕 후 촉촉하게 불은 너를 무릎 앞에 앉혀두고 젖어서 엉킨 머리를 말리고 빗질하느라 신경질을 받아내는 일도 재밌었다고.
네가 귀찮았지만 늘 그리웠다고, 정말이라고.
그리고 사과해야지. 너를 세상에 마음대로 불러내놓고 미운 마음 들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이미 다 자란 너에게 말로 하면 너무 오그라들어서 '엄마 진짜 왜 저래' 괜히 밀어내버리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나 없는 곳에서 펼쳐보고 마음이 뜨거워져서 엉엉 울고 살아갈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늦게 시작한 기록이 내겐 영원히 아기일 딸의 마음에 진하게 새겨졌으면 좋겠다.
그런 날을 상상하면서 첫 페이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