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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태권소녀

by 김윤담 Mar 14. 2025

처음 태어났을 때 갓 삶은 문어처럼 새빨갛고 말캉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땐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양쪽 눈만 떠도 기특하고, 배냇짓 미소만 지어 보여도 밥값 넘치게 하던 시절이다. 딸꾹질만 해도 애처로웠던 그 시절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고 만다. 100일이 지날 즈음부터 아이 앞에는 이 땅에 태어나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끝없는 챌린지가 펼쳐진다. 그 시작은 뒤집기다. 초보 엄마 아빠는 100일 전후로 아이가 뒤집기를 시도하는지 아닌지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 태어난 아기들이 속속 뒤집기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마음은 더 바빠진다. 우리 딸은 뒤집기를 140일 무렵에 했다. 그러니 100일 이후의 40일 동안 내 속은 얼마나 초조했을지 짐작이 될는지. 분명 몸을 엎어뜨릴 때가 됐는데 우리 애는 멀뚱히 누여 발만 통통 내리치며 익룡소리를 빽빽 내지르는 옹알이만 해대고 있으니 속 터놓고 어디 물어볼 곳도 없었던 초보엄마에게는 막막한 시간들이었다. 지금에야 이웃집 새댁이 뒤집기를 기다리며 불안에 떨고 있다면 푸핫 웃으며 '별 걱정을 한다' 너스레를 떨겠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신경이 아이 몸짓에 쏠려있었다. 수시로 카페에 '100일이 지나도 뒤집기 안 하는 아기', '옹알이를 익룡소리처럼 내는 아기' 등을 검색하며 우리 애가 평균보다 뒤처진 건 아닌지, 행여 문제가 있는 아닌지 비교대상을 찾아 헤맸더랬다. 


결국 100일 하고도 40일 지났을 때 딸은 멋지게 뒤집기에 성공했고, 그 후로는 배밀이를 시작하더니 만져보고픈 장난감을 향해 포복자세로 맹렬히 돌진하는 아기가 되었다. 임산부 요가에서 만났던 동기들과 출산 이후 만난 모임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 중 우리 딸이 제일 먼저 빨대컵(아기들은 빨대를 빠는 것도 꽤 큰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사용에 성공했을 때 느꼈던 희열감을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엄마들의 부러움과 놀람이 가득 담긴 순진한 시선, 유치하게도 우쭐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마저도. 자식은 부모의 트로피가 아니라고, 자식의 성취를 내 것 삼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다른 애보다 빨대컵 사용법만 먼저 터득해도 콧구멍을 벌렁거리게 되는 게 엄마라는 걸 그때야 깨달았다. 


시간은 빨리 감기 하듯 흐르고, 그 사이 아이는 뒤집기와 기기, 일어서기와 걷기, 뛰기 과정을 무리 없이 착착착 마스터하고 만 5세, 체육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태권도를 시작한 것이다. 유치부 노란 도복을 입고 잔뜩 겁먹은 병아리처럼 도장에 들어섰던 딸은 태권도 입문 3년 만에 품띠 심사에 응하게 되었다. 심사비는 무려 17만 원! 태권도를 배워본 적이 없던 나는 품띠 시험 보는 데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드는 줄 미처 몰랐다. 심지어 불합격할 수도 있다는 관장님의 코멘트를 듣고 더욱 긴장이 됐다. 집에서 딸에게 시범을 보여달라고 하면 꼭 문어처럼 헐렁헐렁 흐물흐물하게 동작을 하는데, 저래서 어디 심사 붙을 수 있겠나 싶었다. 처음엔 자세 좀 제대로 해보라며 '문어 태권소녀'라고 놀리다가 나중엔 애써 점점 자세가 좋아지고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주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심사비를 날릴 것만 같은 불안함에 휩싸였다. 


그리고 심사 날, 아이와 함께 체육관으로 향했다. 각 지역에서 온 태권도 관원들과 학부모들로 자리는 빼곡했다. 나와 남편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딸의 뒷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덤덤해 보이는 아이와 달리 내가 더 긴장이 됐다. 허둥지둥 폰 카메라를 켜고, 줌을 최대치로 당겨 준비 자세를 취하는 아이 모습을 담았다. 똑같은 흰 도복을 입은 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우리 딸만 눈에 쏙 들어왔다.(당연하지) 심판의 구령에 맞춰 동작을 시작한 딸, 집에서 매가리 없이 흐물거리던 녀석이 절도 있게 척척 자세를 해나는 모습을 보다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멋있어!' 딸에게 반했다. 짧은 다리로 너무나 절도 있게 모든 동작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끝나고 기념사진 촬영 후, 너무나 멋지게 잘 해냈다고 칭찬하는 내게 딸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노라고 소감을 들려줬다. 

"엄마가 문어 태권소녀라고 놀려서 미안해"

"엄마 이제 문어에 '문'자도 꺼내면 안 돼. 알았지?"


이렇게 잘하는 아이를 두고 심사비 날리는 상상은 왜 미리 했을까. 부모의 상상은 왜 마이너스인 쪽으로 더 기우는 건지.. 잔뜩 움츠러들었던 엄마의 마음을 펴 주는 건 역시 언제나 아이이다. 


며칠 뒤, 품띠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러고보면 100일 무렵 뒤집기를 하네마네 하던 시절과 지금의 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겪어보지 않은 아이의 문제에는 초조하고 불안함이 앞선다. 앞으로도 그럴테다. 더 많은 경험을 차곡이 쌓으면 나아질까. 내 생에 둘째는 없으니 첫째이자 막내인 우리 딸과 함께 계속 시행착오를 헤쳐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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