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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갈래 머리 졸업하다

by 김윤담 Mar 17. 2025

아이를 낳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 또한 첫 출산(이자 마지막)을 끝낸 후 처음 아이를 봤을 때 그 생경한 장면은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우선 머리가 새까맸다. 보는 순간 '나랑 똑같네'라고 생각했다. 내가 태어난 직후 찍은 사진에도 보면 빨간 얼굴에 새까만 머리를 곱게 빗어 딱 붙여놓은 아기가 잠들어 있었다. 신생아실에 쪼로록 눕혀놓은 아기들 중에서도 유난히 푸짐한 머리숱을 자랑하는 우리 딸은 단연 눈에 띄었다. 물론 내 딸이라 그랬겠지만..


신생아 때는 물 묻혀 빗어두면 얌전히 가라앉아있던 머리카락들은 조리원에서 돌아옴과 동시에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길이가 자랄수록 트롤처럼 머리는 부풀었고 얼마 뒤부터는 머리 위쪽 양갈래 머리가 가능해졌더랬다. 이후엔 처음으로 앞머리를 자르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동네 미용실에서 빠마도 하기도 하면서 딸의 머리는 몇 번의 변화를 거쳤다.


복실복실한 아줌마 파마머리를 처음하고 나타났을 때는 폭소를 멈출 수가 없었는데 그 머리를 또 양 옆으로 묶어주면 푸들처럼 귀여워서 또 사진을 200장쯤 찍어댔다. 머리가 어깨 넘어까지 길어졌을 즈음부터는 땋기도 가능해졌다.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선생님들의 야무진 손길로 탄생한 하트머리, 선녀머리 등등 다양한 헤어 컬렉션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그 얇디얇은 머리카락으로 인형놀이 하듯 얼마나 즐거웠던가.

뽀송이 씻기고 나와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면 다시 푸시시 부풀어 오르던 솜털처럼 가는 머릿자락들..

아이는 졸릴 때면 한쪽 엄지손은 입에 물고 한쪽 손은 보드라운 제 머리카락을 만지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발로는 내 머리카락을 들쑤시면서..)


유치원생이 되면서부터는 아주 기본적인 양갈래스타일로 정착했다.(옛날 드라마 '아들과 딸'의 후남이 머리) 아침마다 꼬리빗으로 머리숱을 고르게 나눠 묶은 뒤 정성스레 땋아주는 행위는 분명 기쁨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까지도 양갈래머리는 이어졌다. 한 번씩 하나로 묶는 포니테일 스타일을 요구할 때도 있었지만, 하나로 묶어주었다가 집에 올 때쯤엔 산발이 되었으므로 주로 양갈래를 고수했다.


그런데 2학년 1학기를 맞은 딸은 더 이상 양갈래 머리를 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이유인즉슨 '유치하다'는 것이다. 쪼꼬만 게 이제 양갈래 머리는 유치하단다. 벌써 한 학년 진급한 티를 내는지..

어쩔 수 없이 3월 개학 이후부터는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어서 등교하고 있다. 긴 머리 감기고 말리면서 머리 뜯겨 악악대는 것도 양갈래머리 해주는 재미로 버텼는데.. 이젠 싫다 하니 아쉽지만 따르는 수밖에 없다.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생기는 과정일 테니 말이다.


실은 양갈래보다 하나로 묶어주는 게 더 어렵다. 뒤통수가 짱구라서 머릿결이 갈라지지 않도록 모으려면 양갈래 할 때보다 훨씬 더 빗질에 공을 들여야 한다. 브러시로 성글게 몇 번, 꼬리빗으로 여물게 몇 번..

머리카락 뜯길 때마다 오만 성질을 다 부리는 꼬마에게 "너 자꾸 소리 지를 거면 그냥 단발머리 해!" 윽박지르기도 하지만 여전히 딸내미 머리 빗겨주는 일은 즐겁고, 소중하다. 얼마 지나면 스스로 머리도 말리고, 고무줄로 슥슥 머리도 빗어 묶겠지. 그런 날을 생각하면 가끔 드는 귀찮음도 금방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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