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가 있네요. 양쪽 윗어금니 사이가 썩었어요. 총 네 군데, 보이시죠?" 딸의 치아엑스레이를 보면서 마우스로 하얀 이 사이 시커먼 부분을 가리켰다. 딸은 현재 이갈이 중이다. 쌀알만 하던 이가 하나 둘 빠지고, 그보다 좀 더 누렇고 큰 새 이가 다시 자리를 잡고 있다. 위아래 앞니 네 개는 이미 새로 갈았고, 지금은 그 양 옆 이빨이 빠지고 올라오는 중이다. 어차피 어금니도 빠질 텐데 치료를 해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의사는 어금니의 경우 고학년쯤 돼서 빠지기 때문에 충치가 더 커지기 전에 치료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 간단하게 불소도포 하러 갔다가 충치를 네 개나 발견하다니 예상치 못하게 돈 쓸 일이 생겨 속이 쓰렸다.
하는 수 없이 다음 치료 예약을 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딸의 이가 썩다니. 언제나 새것(?)이었던 내 아기의 일부가 썩은 것이다. 이제 아이도 부식되어 가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과잉이고 주책일까.
'산다는 건 점점 낡아지는 일 같아'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을 하던 차였다. 만으로 36살, 슬슬 신체적인 나이 듦을 확인하고 있다. 옛날에 어른들이 왜 밥만 먹고 나면 이쑤시개를 찾는지 알게 되었고, 머리를 뒤적이다 보면 흰머리도 하나 둘 발견되는 게 신기하다. 눈가에 주름도 야무지게 자리를 잡았다. 몇 년 만에 결혼식에서 만난 지인들도 못 보고 지난 세월만큼 훌쩍 나이가 들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나도 그리 보이겠지. 생각하며 잠시 싱숭생숭했더랬다.
딸의 이가 썩었다니.. 찹쌀 모찌보다도 부드럽고 통통했던 딸의 발바닥, 옥수수알처럼 귀여웠던 발가락도 이젠 탄탄하고 길쭉해지고, 민들레 홀씨처럼 얇던 머리카락도 반질반질 윤이 나는 생머리로 변하고, 어느덧 이가 썩어버렸다. 어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늙는 중이라던데, 나의 딸과 '늙음', '부식'이라는 단어가 영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키와 생각이 자라는 만큼 어떤 부분은 깎여나갈 일을 피할 수 없을 거란 뜻이다. 그 첫 시작은 어금니인 것이고.. 단지 충치가 문제가 아니다. 산다는 건 낡아지는 것이고, 깎이는 것. 이만큼 길지도 않은 인생 살아오면서도 얼마나 숱하게 깎여왔던가. 또 얼마나 깎일 일이 많이 남았을까. 나의 아이도 피할 수 없을 삶의 무수한 과정임을 알기에 이토록 마음이 아린 것일 테다.
이왕 태어난 세상에서 좌충우돌하며 많이 울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내 나름 살 방법을 찾아 그럭저럭 씩씩하게 살아내고 있으면서도 고작 아이의 충치에 마음이 일렁이는 건 내가 너무 감성적인 F 인간 이어서일까.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번에 걸쳐 충치 치료를 끝낸 딸은 연신 거울을 보느라 바쁘다. 은니가 반짝여서 좋다며, 활짝 웃으면 반짝이는 게 보이는지까지 확인한다. 내 생각은 다큐멘터리고, 저 친구는 시트콤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센티해졌다가도 이내 "양치 똑바로 해. 아님 치과 가서 또 주사 맞아야 된다 너" 하는 현실 엄마이지만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마음 쓰이는 내가 신기하고 기특하다. 부쩍 어른이 된 것 같다. 나이는 서른 중반이어도 마음은 늘 어린아이인 것 같다고 여겼는데 이젠 그 마음에도 나이가 드나 보다.
산다는 건 점차 낡는 일, 하지만 어떻게 낡느냐에 따라서 세월의 흔적이 더 멋스러운 물건이 있듯이 나도 그렇게 나이 들어가야지. 생각하는 일에 몰두하고, 사소한 것에 감동하면서 딸의 성장과 변화를 기억해나가고 싶다.
딸의 첫 충치, 주책처럼 생각은 멀리멀리 뻗어나가 스스로도 우습지만 그조차도 내겐 특별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