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이 뽑기에 의연한 편이었다. 엊그제까지는..
치과에서 첫 앞니를 뺄 때도 울지 않고 씩씩했다. 그 후 4~5개의 이도 별로 요란스럽지 않게 빠졌다. 치실로 묶어 이마를 톡 쳐 뽑은 적도 있고, 두 번째 윗 앞니는 햄버거를 먹다가 꿀꺽 삼켜버리기도 했다. 마주 보며 햄버거를 먹다가 뭔가 이상하단 표정으로 갸우뚱거리던 녀석, 혀를 요리 저리 굴리더니 "엄마, 나 이빨이 사라졌어!"라면서 놀랐던 표정과 머쓱한 미소는 우리의 귀여운 에피소드로 남았다.
그 이후로도 가지런한 이들은 줄줄이 흔들리며 빠질 기미가 나타났다.
어제는 딸기를 먹다가 신호가 왔다. 송곳니 옆의 왼쪽 윗니가 반쯤 뽑힌 채로 흔들리면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다른 때와 달리 피가 꽤 많이 나자 아이는 겁을 잔뜩 먹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손수건으로 피를 닦고, 손으로 뽑아볼까 했지만 이미 아이는 패닉상태였다. 아프다면서 소리를 있는 대로 다 지르니 나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더니 얼른 뽑아달라고 성화를 성화를.... 피도 줄줄 나고, 애도 난리를 치니 나도 겁이 났다.
"가만히 좀 있어봐!"
분명 빠질 각인데 나도 겁이 나서 세게 하지를 못하겠고, 아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귀에서는 지지직 소리마저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몇 번 손을 댔다 뗐다 반복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포기했다.
"엄마는 이빨 하나도 못 뽑아? 엉엉엉"
이 때문에 서러운 마음을 나에게 온전히 쏟아내는 딸. 얼굴이 새빨개진 채 우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은근 부아가 오르기도 했더랬다. 맘대로 이를 뽑을 수도, 그렇다고 안 뽑을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 독이 바짝 오른 아이는 급기야 내 팔을 치면서 눈을 흘겨댔다.
'지금 많이 불안하구나, 무섭구나'
해봤기에 더 무서운 것이다. 앞서 이를 소동 없이 잘 뽑아서 우리 애는 앞으로도 수월하겠다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그동안 멋모르고 담담했던 아이는 이가 빠질 때의 그 낯설고 이상한 느낌을 이젠 제대로 알기에 싫은 것이다. 그 마음 알지 알지.. 그래도 언젠간 빠질 거야.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아...
다 커버린 강아지를 아기처럼 품에 안고 토닥토닥.. TV나 보자 하고 시선을 돌려 감정 추스를 시간을 줬다.
그랬더니 세상에.. 내 품 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운다고 용을 얼마나 썼는지 이마는 촉촉하고, 콧잔등에도 이슬 같은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결국 이는 뽑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곧 빠질 테니까.
+
그리고 오늘, 결혼기념일 기념 외식 후 들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앓던 이가 저절로 빠졌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이를 손에 들고 아이는 웃었다.
그리곤 냅킨에 이를 조심히 싸서 제 주머니에 넣었다. 이빨 요정에게 편지를 쓰고 제 방 화장대에 올려두겠단다. 내일 아침이면 이빨요정이 동전을 가져다줄 것이다.
2025.3.26.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