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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콤플렉스가 시작되는 나이

by 김윤담 Mar 24. 2025

임신 16주쯤 뱃속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됐을 때 조금은 싱숭생숭했다. 내심 아들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딸 바라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나처럼 살까 봐. 여자로서 살아낸 지난날이 참 지겨웠다. 외모에 대한 지적이나 강박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내 엄마는 타고난 미인이었다. 어딜 가나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 초등학교 때 학교에 엄마가 오면 친구들은 엄마를 보고 예쁘다고 놀라곤 했다. 그리고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넌 왜 엄마를 안 닮았어?" 그건 예쁘지 않다는 뜻이었다. 유독 까맣고(지금은 내 피부톤에 불만이 없지만 그땐 참 싫었다) 통통했던 유년 시절, 호리호리한 부모님 밑에서 나온 내가 날이 갈수록 살이 붙으니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도 볼 때마다 한 마디씩 건넸다. "여자아이 다리가 저래서 나중에 치마는 어떻게 입으려나" 못 들은 척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지만 종아리는 슬금슬금 이불 밑으로 집어넣었더랬다. 


"네 아빠랑 나는 너 나오기 전에 엄청 기대했었어. **(사촌언니)이보다는 무조건 예쁠 거라고 확신했지."그건 내가 예쁘지 않다는 뜻이었다. 엄마는 항상 내 옷차림에 과할 정도로 신경을 썼고, '넌 이렇게 입어야 그나마 낫다, 이렇게 하면 예쁘다'는 식의 참견을 듣 는 일은 일상이었다. 항상 배에 힘을 주고 걷도록 시켰고, 소파에 누워있으면 퍼질러져 있으니 살이 찐다는 핀잔이 날아왔다. 

그런 말들이 귓가에 쌓이면서 나는 내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들의 눈빛이나 말이 폭력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 이제 나의 딸이 8살이 되었다. 내 콤플렉스가 시작되었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어제는 목욕을 마치고 나온 딸이 말했다. 

"엄마, 체육시간에 보니까 친구들은 다 배가 안 나왔는데 나만 배가 나왔어."

예상치 못한 딸의 발언에 남몰래 흠칫 놀랐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왜 배가 나오면 안 되는 거야? 난 요 말랑 배 엄청 좋아하는데"

"아니 다 안 나왔는데 나만 볼록하니까 좀 부끄럽잖아."
뭐라고 멋진 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배 나온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지 뭐. 역시 넌 특별해. 너무 귀여워"라며 

끌어안고 괜시리 배를 간질였다.

아이는 웃었지만 내 말에 그다지 공감하지는 않는 듯했다. 

 

그동안 아이의 외모에 대하 부정적인 언급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비교의 눈을 뜨기 시작했으니 이제 썰물처럼 밀려오는 주변의 자극에 곧 아이는 휘청일지도 모르겠다. 

어딜 가나 마르고 기다랗고 새하얀 여성의 이미지가 보이는 세상 아닌가. 만화는 물론이거니와 편의점에만 가도 음료수 병에는 완벽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여자아이돌의 전신이 인쇄되어 있다. 피자집 전면에는 아이돌 그룹이 환한 미소로 피자 조각을 들고 있다. 피자 한 조각도 못 먹을 것 같은 한 줌 허리인 채로 말이다. 


그에 비해 또래보다 조금 작고, 조금 통통한 딸은 이제 세상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자신이 가진 것을 비교하며 마음의 중심 잡는 법을 배워나갈 것이다. 그 과정이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잘 버텨낼 것이다. 

나도 그 숱한 비교와 자괴감을 헤쳐 나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딸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지적하지 않는 엄마라는 것. 내가 겪었던 부정적인 경험을 되물리지 않을 거라는 것. 남들과 자신의 다른 구석에 뭔가 의기소침해진 딸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더 멋진 말을 해주지 못해 찝찝한 마음이 들었는데 우연히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서 딸의 외모 콤플렉스에 대해 조언하는 미국 가수 pink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https://www.instagram.com/reel/DHirueBJVK3/?igsh=MTF0ZDV1N2dxaXJoNQ==)


-Do you see me growing my hair? -No momma 

-Do you see me changing my body? -No momma 

-Do you see me changing the way I present myself to the world? -No momma 

-Do you see me selling out arenas all over the world? -Yes momma 


언젠가 딸이 또 같은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나도 이렇게 멋지게 답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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