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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눈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by 김윤담 Mar 19. 2025

볼살 통통 두세 살 무렵에는 이놈~만 해도 입을 삐죽거리며 울먹이던 아이는 언제부터 도끼눈을 뜨기 시작했나. 아, 기억나지 않는다. 말문이 완전히 터진 다음부터였을까. 스스로 양치질을 하게 된 무렵이었을까. 첫 가위질을 시작한 때였을까. 


초등학교 2학년, 8살이 된 딸은 내가 했던 말을 두 번 이상 하면 도끼눈을 뜬다. 반달 같던 눈이 순식간에 가늘어지면서 눈동자가 날아와 꽂히면 나는 푸흡, 실소가 터지면서 더 보태려던 말을 삼킨다. 제 딴에는 눈에 독기를 잔뜩 실어 경고를 날리려는 의도인 듯 하지만 다행히(?) 아직 내 눈에는 그저 아기복어 같기만 하다. 그래도 그 눈빛이 무안하지 않도록 같은 말을 세 번까지 반복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아직 육아 8년 차인 내가 요즘 들어 아이를 다 키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 누군가는 코웃음 칠까. 미래의 내가 이 기록을 보면 웃을까. 하지만 지금 나는 정말 그렇다.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하고, 홀로 등하교를 하면서 어쩐지 딸이 어린 하숙생처럼 느껴진다. 딸보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이들에게 애가 너무 빨리 커버려서 이제 나는 할 일이 거의 없다고 하면 못 미더운 눈치지만, 아이는 벌써 일상 다반사에 내 손이 거의 필요치 않을 만큼 성숙해졌다. 원래 아이를 독립적인 성향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한 덕도 있지만 아이 역시 야무진 편이라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이젠 나를 향한 도끼눈도 인정해 주기로 한다. 도끼눈을 노여워하지 않고 귀여워하며 넘어가는 건 내가 아이를 신뢰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과도 같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방에 빨래랑 가방 정리 다 했어?" 대답이 시큰둥하면 잠시 후에 "다 했냐고?" 똑같은 질문을 또 던진다. 그럴 때 "지금 하러 가고 있어"라면서 싸늘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그건 아이가 내게 보내는 신호이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방 정리는 내가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차피 스스로 일임을 아는 아이로서는 '알아서 할 테니 그만 물어보라'는 거다. 


"엄마, 아까는 노느라 그랬어. 지금 치우러 가는 중이야."라고 상냥하게 말하는 아이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나는 그런 아이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비록 흘겨보면서라도 제 할 일을 해내는 녀석이라면 충분히 기특하다. 

얼마 전 한 유튜브 채널에 이호선 교수가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아이가 0~1세일 때 부모는 보육자, 2~3세에는 양육자, 4~6세에는 훈육자, 초등학생 시기에는 격려자, 청소년기에는 상담자, 성인기에는 동반자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어느덧 양육자에서 나아가 격려자의 위치에 다다라 있었다. 초등학생부터의 부모 역할은 아이가 독립적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그저 응원하고 격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거다. 


어쩌면 벌써부터 아이가 작은 하숙생처럼 느껴졌던 것도 부모 발달단계에 맞는 과정이었던 듯싶다. 아이가 두 돌이 채 되기 전부터 몸이 아팠고, 그 시기 중 일부를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지나왔기에 실은 육아에만 헌신할 수 없었다. 엄마로서 내 몸뚱이로 살아내는 것이 먼저인 시간들이었다. 만 8살에 제 할 일을 야무지게 해내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 짠한 건 그 시절 때문일까. 


그래서 나를 흘겨보는 도끼눈도 괘씸하지가 않다. 저런 성질머리라도 있어야지. 고분고분 '네, 엄마' 하는 딸이라면 마음이 아려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볼 것 같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모든 것을 아이 자율에 맡기는 쿨한 엄마인 것 같지만, 사실 오늘 저녁에는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결국 아이는 눈물을 찔찔 했다. 

두 자릿수 더하기에 올림수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과부하가 온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되는 문제인데 자꾸 연필을 놓아버리려는 아이가 답답해서 정색하고 한 소리 했더니 이번엔 흘겨보는 대신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나왔다. 


문제를 틀리는 건 괜찮다고, 그러나 공부는 늘 하던 것보다 조금 더 어려운 게 등장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이런 난이도에 벌써 연필을 놓으려 하면 안 되는 거라고.. 결국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더랬다. 돌아서면' 그깟 수학문제가 뭐 중요해. 울면서 문제 풀다가 공부정서만 망치지' 생각할 거면서도 그랬다. 이것이 바로 현실엄마인 걸까. 초2 수학문제도 서술형은 정신 바짝 차리고 읽지 않으면 함정에 빠지기 쉽다. 지금이야 저학년이니까 아이 앞에서 수학으로 잘난 체 하지, 학년이 더 높아지면 이젠 아이의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지금 점수를 따놔야 할 텐데, 책상 앞에 나란히 앉으면 은근하게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다스리기가 어렵다. 역시 난 하수다. 


이제 아이와의 말싸움도 제법 대적할만하다. 꼬마라고 얕보다가는 논리로도, 기억력으로도 밀리기 십상이다. 한 마디 던지면 두세 마디가 날아오는데 모두 맞는 말이다. 이럴 수가.  내가 어른이라고 우위에 있다고 우기다가는 더욱 체면 깎일 일만 남은 거다. 그게 약 오르면서도 왜 흐뭇한지.


여러모로 아이는 나보다 더 크고 나은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귀여운 도끼눈도 그 과정이겠지. 어쩌면 아이와 나의 진짜 관계는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아이 속에 어떤 엄마로 각인될 것인지, 어떻게 곁에 머물 것인지는 모두 나에게 달렸다. 결국 나만 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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