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피아노 역사는 피셔프라이스 아기체육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명 국민 육아템으로 돌 전 아기 있는 집에는 필수라길래 당근마켓에서 만 오천 원쯤 주고 구매했더랬다. 아이보리와 베이지 톤으로 감성을 맞춘 신혼집에 타이니 모빌보다도 더 현란한 핑크빛을 자랑하는 물건이 좁은 거실 한쪽을 당당히 차지했다. 그래도 좋았다. 아기가 얼마나 잘 놀까? 궁금한 초보 엄마는 얼른 매트 위에 눕혀보았으나 웬걸, 짤뚱한 팔다리를 마구 휘젓다 툭 친 건반에서 소리가 나는 게 요상했는지 딸은 울음을 먼저 터뜨렸다. 감각에 예민해 그런 건지 둔해 그런 건지 아기체육관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다 얼마 뒤 만 원에 다른 집으로 팔려갔다.
그다음 피아노는 멜로디언처럼 생긴 건반 장난감이었다. 말문이 트이고, 제법 악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사줬더니 뚱땅거리며 노래 부르는 시늉도 하고, 조악한 성능의 마이크도 달려있어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저 소리에 취해 노는 장난감으로 쓰다가 조금 더 큰 다음에는 도레미파솔라시도 건반에 색색의 스티커를 붙여 음계를 일러주기도 했다. 오동통 포켓몬 같은 손가락으로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건반을 겹치지 않고 조심히 눌러보는 모습도 소중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은 작년부터 아파트 상가의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시댁에서는 첫 손주의 피아노학원 등록 소식을 듣자마자 코스트코에서 야마하 전자피아노를 사서 보내주셨다. 처음엔 오른손으로만 겨우 치는 '나비야'를 배워오더니 왼손으로 단순한 반주를 넣고, 연말 즈음에는 학원에서 열리는 조촐한 연주회에서 '루돌프 사슴코'와 '징글벨' 같은 캐럴 몇 가지를 더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연주회 날 학원 로비에 빨간색 플라스틱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아이의 첫 연주를 들었을 때 정말 신기했다. 기특해서 눈물이 날 것 같고 그런 것보다도 정말 순수하게 경이로운 감정이 들었다.
그러니까 쟤가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인데, 아기체육관에 발만 닿아도 울던 애가 자라서 음계도 익히고, 심지어 양손을 움직여서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는 게 믿기 어려울 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눈앞에서 캐럴 메들리를 치고 있는 저 아이는 내가 태어나 이룬 모든 것 중에 가장 완벽했다.
내 인생은 뭘 하든 아쉽고 모자란 것 투성이었건만, 저 아이만큼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완벽한 형태로 보였다. 매끄럽게 흘러가던 멜로디가 멈칫, 하다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마저도.
점차 피아노가 익숙해져서인지 요즘은 눈 가리고 하는 피아노 연주에 빠져있다. 헤어밴드로 제 눈을 가리고 감으로 연주를 하는데 이 또한 신기하다. 아이는 매 순간 자란다. 내가 정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 사실이 나를 안도하게 하는 때가 있다. 열중하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볼 때 그렇다.
그럴 땐 보통의 인간들이 저 살기도 팍팍한데 왜 기어이 자식을 낳아 기르는 방식으로 인류를 이어오고 있는지 알 것 같다. 내 인생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서. 미래와 연결되고 싶어서. 그리고 보고 싶어서. 나의 미래이자 또 과거인 아이의 모습에서 다시 삶의 영감을 얻고 싶어서..
점점 매끄러워지는 피아노 연주소리를 들으며 나는 매일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이 또한 모두 딸, 너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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