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올린 지 한참이나 되었다.
처음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땐 그야말로 내 감정을 가감 없이 쏟아내기에 바빴는데, 지나고 나니 정돈되지 않은 일기처럼 부끄럽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외면했다고 고백하는 것이 맞겠다.
올 2월에 작성한 마지막 글 이후로는 꽤 편안한 일상을 보냈다.
새 직장을 구해 출근하기 시작했고, 아이도 무럭무럭, 남편도 무탈하게.
'엄마를 미워합니다'라는 감정조차 잊고 살고 싶었다. 지난 나의 이야기로 다시 내 속을 헤집어 놓고 싶지 않아 무던하게, 그늘 없는 사람처럼 올해를 살아냈다.
그럼에도 가끔은 꿈에서 만난 엄마와 치열하게 싸웠다. 제발 한번만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나를 뿌리치는 엄마, 꿈속에서조차도 그런 엄마가 죽도록 미워서 통곡을 하며 깨 스스로 놀란 일도 있었다. 그리고 한번 더 쿵, 아직도 구나. 아직도 내 안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구나 싶어 쿵.
2021년 새해를 병원에서 시작한 이후 제발 올해가 가기 전까진 병원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또 한 손엔 링거를, 환자복을 입은 채 떡진 머리로 타자를 쳐 내려가고 있다.
프로젝트의 마무리로 한창 바쁜 연말, 남편은 또 나 때문에 몇 번의 연차를 내고 아이를 케어해야 했다. 또 입원하게 됐다는 사실을 시댁에도 알리고 싶지 않아 남편에게 무게를 다 지우고 말았다.
시댁 어른은 누구보다 내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주실 분들이지만 그럼에도 결코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자리는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낀다. 물리적이건, 물질적이건, 심적이건, 그분들의 마음에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
불편해서라기보다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랄까.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찬 며느리이고 싶다.
정말이지 이렇게 불시에 열이 올라 팬티 한 장 만이고 남극에 떨어진 사람마냥 벌벌 떨게 되는 순간만 아니라면 난 보통의 사람처럼 정말 건강하다. 그렇다고 느낀다. 그러나 고열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긴장이 풀렸던 나의 일상을 다시 수포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나 한 명의 아픔으로 인해 남편과 아이, 회사 사람들에게까지 폐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한편으론 멀쩡히 살다가도 이렇게 한 번씩 휘청하는 내가 밉고, 또 가여워서 병실 커튼을 닫은 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렇게 아플 땐 누구를 떠올려야 할까.
누구를 떠올려야 신세 지는 느낌 없이 포옥 기댈 수 있을까. 그게 보편적인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엄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답을 애써 외면한다.
다만 우리 아이에게는 언제나 이런 순간 '엄마'인 내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입원 병실의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말을 할 때마다 호통 치듯이 말을 하신다. 4인실에는 나를 포함해 비교적 젊은 사람들인 편이라 병실 커튼으로 침대를 다 가리고 있어 할머니 혼자 외로우실 듯도 한데 선뜻 살갑게 말 붙이기가 어렵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한다. 어딘가 있을 나의 엄마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저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아픈 나를 외면했으면 더 건강하고 짱짱하게 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먼저 늙는 사람은 더 빨리 초라해지니까. 그런 모습으로 나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그런 모습에 내가 마음 아플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