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출장을 가고, 딸아이와 단 둘이 붙어 주말을 보냈다. 함께 마트도 가고, 산책도 나가면 하루가 좀 빨리 갈 텐데 타고난 집순이 성향의 아이는 오늘도 집에만 있겠다고 고집을 부려 온종일 집안에서 부대끼며 하루를 채웠다.
다저녁이 되어서는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줬다. 플라스틱 컵에 찰랑찰랑 물을 담아 딸기주스라며 내어놓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물었다.
**아 엄마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고 있어?
응. 망설임 없는 대답
오늘 엄마가 미운 때는 없었어?
응. 역시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아이의 몸에 괜스레 물을 끼얹어주었다.
평소 텐션이 그리 높지 않은 나는 아이와 놀아주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아이 수준에 맞춰 역할놀이를 하는 것도, 그림이나 클레이 놀이를 하는 것도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더 즐거울지 잘 모르겠다. 행여 나의 그런 모습을 아이가 느껴 서운하진 않을까 신경 쓰이면서도 맘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돌아서면 미안해진다. 조금 더 몸을 쓰고, 마음을 써서 놀아줄걸.
그럼에도 나를 사랑한다며 다가와 뽀뽀를 퍼붓고,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내 얼굴을 그려주는 딸이라 참으로 감사하다.
여전히 나는 불쑥불쑥 찾아오는 엄마에 대한 감정의 파도 속에 살고 있다. 어떤 날은 그녀를 가여워하고, 어떤 날은 죽도록 미워한다. 어떤 날은 한 번도 떠올리지 않다가도, 어떤 날은 생각의 틈새마다 자리해 어금니 사이에 낀 고기처럼 신경 쓰이게 만든다.
나는 엄마다. 나의 딸이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다. 나의 엄마도 딸이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 엄마는 왜 자신이 미웠던 적이 있느냐고 묻지 않을까.
왜 내게 미안해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내 마음 한편엔 죽어도 인정하기 싫은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있을까.
실은 엄마도 내게 미안해하고 있을까.
그럴까. 언제나 마침표 대신 물음표로 끝나는 메아리 같은 질문들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미어지다가도, 끝끝내 기억 속에 남은 내 엄마의 모습은 역시나 정 반대라서
다시 미움으로 기억을 또 덮는다.
사실 '이럴 줄 알았으면 엄마가 되지 말 걸'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다. 누군가의 인생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칠 존재인 줄 알았다면 정말이지 안 했을 거다. 하지만 아이의 말캉한 볼을 쓰다듬으면 그런 생각은 또 먼지처럼 휙, 나는 또 웃고 있고, 손은 보드라운 살결을 쓰다듬고 있고.
나도 한때는 엄마에게 그런 존재였겠거니 생각하면 눈가가 시큰하고, 가까운 과거를 돌이켜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 신파 같은 감정의 기복과 기억의 습격에 오늘도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 엄마가 내게 물어준다면. 내가 오늘 내 딸에게 물었던 것처럼
엄마가 미운 때는 없었느냐고 물어준다면.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와락 안겨 엉엉 울어버리고 말 것 같은 그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