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좀 가리는 편이다.
이제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가리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외톨이가 된 느낌이다.
결혼과 동시에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지만 기분은 어쩐지 홀가분했다.
내 인생과 인맥을 리셋할 절호의 기회야!
복잡하고 시끄러운 관계 속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지내보자.
백화점만 가도, 버스만 타도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애, 고등학교 때 방송부장이었던 애, 혹은 노처녀 히스테리가 극심했던 선생님을 마주쳐야 했던 동네.
한 직장에서 매일 마주하며 온갖 단점을 발견해야만 했던 상사, 그리고 그를 관찰하고 조롱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동료들. 그때의 일상은 흥미진진했으며 모든 환경의 변화에 곤두서 있었고, 자주 웃었으나 그만큼 자주 분노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파도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직장에서의 '선', 기본적인 매너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관계의 '상하 여부' 나와 내가 속한 무리의 조류를 기민하게 분석해 평하는 것은 사실 꽤 재미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굉장히 지치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왕복 5시간이 넘는 곳에서 새로운 둥지를 트는 일은 내게 걱정보다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내 시간을 충분히 누렸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그 흔한 산후조리원 동기나 아이 문화센터 친구도 사귀지 않았지만 (못 사귄 건지도)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갈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가 하루에 똥은 몇 번 싸는지, 색은 어떤지, 밤에 몇 번 수유를 하는지, 어떤 물티슈가 좋은지, 어떤 어린이집이 좋은지 이야기하다 결국은 남편이나 시댁 이야기 혹은 자랑으로 귀결되는 대화 패턴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피했던 부분인데 한편으로는 당시 그랬던 나의 태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재수 없지만 정말이지 그런 대화는 별로였다.
나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론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그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주변에 없다면, 그래 차라리 없는 채로 지내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결혼한 지 어언 6년 차, 그렇게 콧대 높게 사람을 가리던 내가 이제는 좀 사람이 고파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둘러보니 내 주변에 편히 커피 한 잔 마실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득 문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게 맞는 걸까?
과연 나는 그토록 괜찮은 사람인 걸까.
온전히 아이에 대해서만 이야기 나누고, 가끔 모여 시댁 흉보는 것도, 자랑을 들어주는 것도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벽을 쳤을까.
의도적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충분히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발가벗은 듯 부끄러워졌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나서, 여기 산 지 6년이나 된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추구하지도 않는 대화나 관계에 끼어서 지내야만 하는 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요즘의 나는 사람이 고프다.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괜찮은 '척'하는 사람 말고.
그래서 나를 알아봐 줄 괜찮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
이런 고민은 나만 하고 살고 있는 걸까.
이 글을 보는 당신은 곁에 좋은 친구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