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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Mar 27. 2023

결국 다 망치고 말 거라는 확신

'사랑의 이해' 안수영처럼 

나만 드는 걸까. 이런 확신은?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내가 오랜만에 몰입하며 챙겨 본 드라마였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지극한 일상 속 배경 중 하나인 '은행'을 줌 인해 밖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그들만의 세계를 견고히 묘사한 것이 꽤나 인상깊었다. 


드라마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자면 '은행원의 진지하고도 지독한 썸 이야기'라고나 할까.

등장인물들은 각자 처절하게 마음아파하고, 좌절하고, 상처받지만 사실은 어디에서 들어봤을 법한 사내연애, 혹은 사내 스캔들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내 마음을 울렸던 건, 주인공 각자의 성격과 내면을 너무나도 성실하게 보여주고,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현란한 스토리와 에피소드가 아니라 아주 느린 호흡으로 인물 각자의 히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듯한 연출과 연기가 좋았다. 


그중에서도 여주인공인 '안수영'은 가장 마음이 쓰이는 캐릭터였다. 

은행 내에서 대졸 정직원이 아닌 고졸 계약직의 위치, 성실하게 일하지만 번번히 정직원 전환에 탈락되고, 악착같이 일하면 일하는 대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 하는대로 그를 향한 크고 작은 뒷말들이 오고 간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모르지 않지만 애써 외면 하며 텅 빈 눈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내는 한 여자. 

그게 '안수영'이었다.


불행했던 안수영의 청소년기와 어려운 가정상황은 나의 과거와는 달랐지만 비슷한 결이라 쉽게 젖어들 수 있었다. 

묘하게 모나있는 안수영의 근본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자신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남자를 밀어냄으로써 진심을 확인하고, 알면서도 지레 포기하고 관계를 망치는 편을 선택하는 고집과 미련함도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답답했고, 싫기도 했다. 


시청률이 높지 않았던 '사랑의 이해'의 클립들을 찾아보면서 댓글을 살펴보다보니 

일반 사람들에게는 여주인공의 태도가 그리 공감을 선사하진 못하는 듯 했다. 

결국 낮은 시청률은 그러한 포인트가 이 드라마를 더 깊게 이해하는 사람들만 추려낼 수 있게 했던걸까?


시청률과는 별개로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는 꽤 높이 인정받았던 것 같다. 

배우들의 생활연기도 좋았고, 연출도 세련되어 자칫 지루한 스토리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안수영 이외에도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자 처한 상황과 매력이 다 달라

구석구석 씹어먹으며 보는 재미가 있었더랬다. 


그중에서도 단연 내 마음을 건드렸던 건, 스스로가 가진 것을 다 놓는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는 안수영이었던 거고.

아무리 열심히 만든 모래성도 기어이 파도는 다 무너뜨리고 말더라면서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까요? 라고 묻던 안수영

파도가 덮치기 전에 먼저 무너뜨려버렸어요. 라고 말하던 그녀였다. 

상수와의 관계에서도 세상을 설득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보다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쪽을 택했던 것도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누군가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나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과 불화하지 않지만

텅 빈 눈의 안수영 같은 면모는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음을..

이 드라마를 통해 자각할 수 있었다. 


마치 유리성처럼 은행이라는 세계에 갇혀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주어진 환경에 매어 사는게 요즘의 우리이기도 하니까. 


몇 년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 안수영과 하상수는

결국 행복해졌을까? 

지금쯤 어딘가에서 조금만 마음 복작하고, 그보단 더 많이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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