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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Mar 05. 2024

나와 같은 상처를 마주한다는 것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나은 공감

얼마 전 '유퀴즈'에 배우 김남주가 나온 편을 봤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담담하게 고백하려 애쓰는 그녀의 모습에서 서글픔이 묻어났다.


"김승우 씨가 아이들한테 잘하는 모습을 볼 때 부럽기도 하지만 정말 기뻐요. 받지 못했던 사랑을 아이들한테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빠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 아니까요. 행복한 가정을 제공하고 지켜줄 수 있다, 지켜줘야 한다는데 큰 뿌듯함을 느껴요."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부정(父情)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그는 본인이 일군 가정 속에서 자신의 결핍을 충족시키며 현실을 가꿔나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세상 화려해 보이는 배우의 내면에도 그늘은 있었구나.. 싶었다. 그의 담담한 고백만으로도 뭉클해져 눈가가 아릿했다.


요즘 열심히 소통하고 있는 스레드를 통해 다양한 사연을 접한다. 나 못잖은 정서적 학대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감정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보면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세상에 나 혼자만 불행한 게 아니었다는 안도 뒤엔 어째서 이렇게 많은 이가 가정 속에서 불행한 것일까. 어째서 이 사람은 세포 하나하나마저 부정하고 싶던 내 마음을 공감한다고 하는 것일까. 가슴이 아프다.


오늘은 스레드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저는 12년 전 어머니가 스스로 가시고 아버지, 오빠, 할아버지, 할머니를 엄마, 아내, 며느리처럼 수발하고 지내다 엄마가 왜 그렇게 가버렸는지 너무 이해되어 버려서 가족과의 절연을 택했어요. 전 우울 불안 사회공포증으로 6년째 치료 중이에요. 이런 사람들에겐 안전기지를 여러 개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데 전 제 몸뚱이 말고는 안전기지가 없어요. 그나마 회사가 안전기지였는데.... 최근 회사에게도 부정당해서 너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어떻게든 만들어가려고 하지만... 과연 나를 품어줄 배우자가 있을까 싶고, 오만 생각이 다 들긴 해요. 그래도 쓰니께선 이성적이고 판단력 있는 남편,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기천사, 따스한 시댁이 든든하게 안전기지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 참 좋아 보여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이 환경 속에서 꼭 잘 극복해내고 있다는 소식 전해주세요 그러면 저도 좀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웹상에 맴도는 내 글을 우연히 발견한 이의 따뜻하고도 슬픈 메시지였다.

3년 전쯤 처음으로 엄마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주제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이에 대한 글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만큼이나 엄마를 처절하게 사랑하고 미워하고, 도망쳐본 사람이 세상에 없나 두리번거려봐도 속 시원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언제나 '부모와 거리를 두는 선택은 당신의 몫'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애타게 찾은 건 그런 원론이 아니었다.

댓글을 남긴 이도 '듣고 싶었던 말'을 찾아 헤매다 이리로 닿은 것일까.


'엄마'라는 굴레가 너무 힘들면, 도망쳐서 당신부터 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음껏 미워하라고,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을 만큼 죽도록 미워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쓰는 일은 후련하기도 했지만,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쓰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글자 뒤에 숨어 내 오장육부를 다 드러내버린 것이다. 이런 글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곤 차마 생각지 못했다.

토해내듯 글을 쓰다가 꽤 오랜 시간 멈췄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한때는 과거에 매몰된 채 써 내려간 글이 지저분한 방처럼 느껴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구 어질러놓은 내 방에 어떤 이들은 기꺼이 찾아온다.

나도 이만큼 엉망이었노라고, 그래도 살아냈노라고, 당신을 보며 위로를 얻는다고, 당신처럼 살아내 보겠노라고 고백한다.


이보다 더 큰 감동이 있을까. 요즘 나는 이들의 말에 되려 용기를 얻는다.

세상에 펼쳐 보일 나만의 메시지를 찾은 듯도 하다.

내가 괴로울 때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세상에 많은 '나'에게 전하고 싶다.


화려한 배우의 고백이 아직도 내 마음을 시큰하게 하는 것처럼.

내 글이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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