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대신 카스테라
분명히 가려고 했다.
사실 아침부터 가기 싫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이건 가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뭔가를 시작할 때는 들뜬 마음에 영혼도 바칠 기세로 밀어붙이다가,
막상 하게 되면 도망치고 싶어졌다.
왜 그러는거지? 참 피곤한 성격이다.
한달에 한번 모여 한시간동안 책을 읽고 좋았던 문장을 이야기하는 모임.
정말 부담 없고 첫모임에서의 느낌이 참 편안하고 좋았는데,
그럼에도 가야하는 날이 오니 희안하게도 가기 싫다는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단점이고 그것을 고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는 요즘이기에
가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고 힘들게
책을 고르고 골랐다.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문장이 들어있는 책.
박민규 작가의 책으로 정했다.
며칠 전 본 '파반느'라는 영화가 참 인상깊어서 원작을 읽어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근처 알라딘 서점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없었고, 작가의 단편집인 '카스테라'가 있었다. 책과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거니까 이렇게 '카스테라'를 고르게 된 것도 이유가 있겠지라고 운명론적인 선택을 하고 퇴근시간 30분 전에 슬금슬금 책상 정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때 대표님의 한 마디에,
"오늘 저녁에 밥 먹으면서 회의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책모임 가야하는데 책모임 가야해서 안된다고 하기엔 뭔가 이유가 너무 약한 것 같고, 지금 책모임이 중요하냐 그럴 것 같고,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같고 ..... 그래서...) 그럼요! (책모임 안녕...) "
라고 말해버렸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큰 강에서 나의 의지와 선택이 나를 이끈다고 믿지만
사실 아닐 때도 많았다는 것을.
하루종일의 고민이 괜한 것이 될 수 있음을.
하지만 그 예상못함을 좋아하는 대문자P인 나는 어쩌면 이렇게 되려고 아침부터 그렇게 고민을 했었나보다, 그래서 그렇게 가기 싫었나보다 라고 또 마음대로 운명을 해석하며 책모임 대신 야근을 하게 되었다.
박민규 작가 책은 그래도 꼭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