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별을 맘에 품은 내 학생들
한국의 청소년들과 케이팝 아이돌은 사실상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좋아하는 아이돌에 따라 그룹별로 친구들이 나뉘고 레전드 시상식 무대 직캠을 함께 보고 포카를 교환한다. 내 청소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지드래곤을 너무나 좋아해서 내 중고등학생 시절은 그를 빼면 껍데기밖에 남지 않는다. 시험 끝나고 원 없이 보는 무대 영상, 콘서트 라이브, 보이는 라디오는 내 삶이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몇 안 되는 활력소 중 하나였다. 내가 연예인 덕질을 해서 그런지 아이돌에 빠지는 과외학생들을 너무나 이해하기가 쉽고 학생들도 그런 내가 편한지 아이돌 덕질이나 고민을 정말 많이 얘기해주곤 했다. 그들을 통해서 요즘 친구들은 이렇게 덕질하는구나 배워가는 것도 재밌었다.
(아래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이며, 누구의 이야기인지 추측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조금씩 이야기를 재가공하였습니다.)
스누라이프를 통해서 지은이라는 학생의 과외를 맡게 됐다. 지은이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생애 첫 덕질을 시작하려던 중이었고 그 대상은 세븐틴이었다. 워낙 낯도 많이 가리고 조용한 성격이라 처음엔 수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어 수업이었는데 부끄러움이 많다 보니 잘 모르는 영어 단어를 소리 내어 읽는 걸 창피해하고 , 혹시라도 틀릴까 봐 잘 모르는 부분도 쉽게 질문하지 않으려 했다. 지은이랑 얼른 친해져야 수업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차 수업하러 딱 지은이 방에 들어갔는데 다급하게 뭘 막 치우고 있었다. 뭔가 했더니 세븐틴 앨범들이길래 이거다! 하는 생각에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마침 나도 그즈음 고잉세븐틴을 보면서 세븐틴이라는 그룹을 좀 알아가던 중이라 대화가 쉬웠다. 확실히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과외교사로 살아가기가 훨씬 쉬워진다.
최애가 누군지, 어떤 무대를 좋아하는지, 포카는 어떻게 나왔는지, 요즘은 포카 교환은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니 이 친구가 원래 이렇게 활발한 친구였나> 싶을 정도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한번 물꼬를 트니 수업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예를 들어 used to 동사원형을 가르쳐줄 때도 세븐틴 노래 가사 중에 <we used to be best friends>를 들어 가르쳐주니까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 파닉스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이제 중학생이지만 기본적인 문장 해석을 어려워하던 지은이였는데 함께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학교 영어 수행평가도 만점 받아오고, 갑작스럽게 친 단원평가도 꽤나 높은 점수를 받아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상으로 학교에 세븐틴을 좋아하는 친구가 없어서 함께 덕질하기가 어렵다는 지은이를 세븐틴 멤버 생일카페에 데려가기로 했다. 미리 부모님께 허락도 받고 홍대 쪽에서 하는 생카 네다섯 군데 정도를 함께 돌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지은이가 자기 너무 행복하다고, 영어도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하는 거 너무 재밌고 좋다고 하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사실 친구들이랑은 생카 몇 번 가봤지만 미성년자를 데리고 생카를 가니 대중교통 타는 것부터 특전 안내해 주고받아오는 것, 길 안내하는 것 등등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아 그냥 집에서 공부나 가르칠걸 괜히 오버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학생이 저렇게 말해주니 그런 생각은 싹 다 녹아내렸다. 그렇게 지은이는 한 2년 정도 세븐틴을 열렬히 사랑하다가 버추얼 아이돌로 옮겨갔다.
흔히들 그런 거 다 좋아하면서 공부를 어떻게 하나, 학생의 본분은 공부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세상의 즐거운 자극과 쾌락에 어느 정도 무뎌진 우리도 모든 오락거리 다 끊고 한 가지 일만 하라고 하면 못할 텐데 아직 마음에 굳은살이 박이지도 않아 낙엽만 굴러도 웃음이 나오는 학생들에게 그런 태도를 강요한다? 어불성설이다. 그렇게까지 모든 욕구를 다 눌러가며 가야 할 대학은 세상에 없다. 인생은 대학 후에도 이어지고 우리가 가르쳐야 할 건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지은이 말고도 아이돌을 좋아하고 또 그 마음을 적절하게 수업에 녹여가며 수업을 한 학생들은 그 이후에도 꽤 있었다. 덕질하는 마음을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엄하게 혼내고 가르쳤다. 그러면서 <아 아이돌 좋아하는 학생 지도하는 건 이제 전문가가 된 것 같다>라고 생각하던 차, 나는 난이도 최상 엑소 사생 과외학생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