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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Oct 24. 2016

'공각기동대'를 보고

자, 이제 어디로 갈까?

1.


 지대넓얕을 듣는데 지대무비라는 새로운 코너에서 여러 영화들을 들려줬다. 우연찮게도 내가 얼마 전 보고 쓴 안경도 있었다. 김도인님의 취향이 나와 맞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패널이 '공각기동대'라는 영화를 들려줬는데, 그 많은 에피소드 중 1995년의 이 영화를 주된 소재로 삼이 이야기를 진행했다. 언제나처럼 농담과 진담이 반반씩 섞인 방송이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역시나 비교적 명확했다.


 채사장이 이 영화를 짝사랑과 결혼, 그리고 출산에 대한 이야기라고 단정 지었지만, 실제로는 이 영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들에게 그렇게 긴 시간의 토론이 필요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짧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먼저 구시대에서 나올 수 없는 세계관의 등장과 이것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들이 먼저 언급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지금 시대에 와서 굳이 또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여 년 전 그 시대에서는 놀라운 상상력이었을 분명한 것들이 지금 우리 세대에서는 실현 가능한 것들이 되고 있으므로. 그러니 이 영화가 놀랍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보자마자 얻게 되는 직관적 감상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놀랍다. 이 영화를 오마주한 수많은 영화들, 그리고 이 영화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는 수많은 아류작들이 떠오를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오마주한 매트릭스나 그녀 같은 영화들을 지나서 아주 개인적인 취향으로 웹툰 덴마의 God's lover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중에 알기로 영화 트렌센더스와 이 에피소드가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나중에 봐야지.


 나중에 까먹을까 봐 스토리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공안국 제9과의 인물들이 주인공이며, 6과와 같은 목표를 갖고 범지구적 테러리스트인 '인형사'를 체포하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인형사는 외무부의 비밀 프로젝트인 코드 2501의 버그 같은 네트워크 생명체였다. 6과는 자국의 결함인 인형사를 초법적인 행위를 통해서라도 회수하려 하고, 9과는 인형사의 내막을 모른 채 그를 쫓다가 결국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고 6과와 대립한다. 그 와중 인형사의 목적은 주인공인 사이보그 쿠사나기와 융합하는 것이었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목적을 달성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융합에 성공한 인형사, 혹은 쿠사나기가 고린도전서의 한 구절을 읊으며 '자, 이제 어디로 갈까? 네트워크는 방대해'라는 말을 붙이는 것으로 끝난다. 



2.


 이 과정에서 많은 철학적 명제들이 등장한다. 우리의 자아는 무엇인가. 영화에서는 고스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네트워크는 전뇌라는 이름과 동의어로 쓰이며, 전뇌로써 고스트를 주입할 수 있음 또한 암시한다. 주인공 쿠사나기는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인형사는 자아란 기억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류는 자신과 같은 시스템에 불과하며, 정보를 영구히 존속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로 자아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3.


 이 철학적 명제를 제쳐두고 나는 이런 상상을 해봤다. 의사 체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 세계에서는 타인에게 새로운 기억을 심어줄 수 있다. 그 타인은 스스로의 기억을 잊고, 새로 주입된 기억을 통해 자신을 인식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던 한 남자에게 가족과 아내와 딸에 대한 기억을 심어주면 그들을 추억하며 분노하기도, 기뻐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내에서는 그러한 인간을 체포한 뒤, 당신의 기억은 조작된 것이라 일러준다.


 나는 그 뒤 그 인간의 남은 삶이 궁금했다. 그 사람에게는 아내와의 갖은 추억, 그러니까 그녀와 처음 만난 날의 공기, 그날의 기온, 날씨, 나눴던 대화, 그녀에게 처음 프러포즈하던 때의 터질듯한 심장소리, 그녀의 아이를 낳을 때의 설렘, 그 아이를 처음 품에 안을 때의 감동 같은 것들이 분명 기억 속에 남아있을 텐데, 그것들이 모두 허상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삶이란 무엇이고 진실이란 무엇일까. 나는 그 사람이 자신의 기억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어도 이전과 같은 삶을 살게 되리라 상상했다. 그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고, 그들을 기억하며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허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에게 있어서의 삶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인형사가 말했듯, 결국 기억이 자신의 총체 그 자체이지 않을까. 그래서 인형사는 경고하는 것이다. 인간이 기억을 조작하게 되었을 때 그것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4.


 아직 우리는 사람의 기억을 조작할 만큼의 과학기술을 발견하지 못했다. 미국 CIA의 MK울트라와 같은 시도가 있긴 했으나, 타인의 기억을 마음대로 주입하고 그의 자의를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되진 않은 세상에 있다. 혹시 뒷 세계는 어떨지 모르나 일단 내가 사는 세상은 그렇다. 앞으로는 어떤 세상에 될지 모르겠다. 그런 기술의 진보를 이룩한 사회일지라도, 사회적인 발전 역시 함께하여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과 의사를 존중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전까지 라면, 나의 기억을 소중히 하고 앞으로의 경험에 많은 것을 기대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나만의 유일성. 그것은 나의 육체나 뇌에 새겨진 대뇌피질의 뉴런들의 돌기가 아니라 오로지 나만이 갖고 있는 경험과 생각, 그것이 아닐까. 



+ 영상미와 표현력 역시 뛰어나다. 왜인지 모르게 내 방에 이 영화의 디브이디가 있었다.

++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잠수한 쿠사나기가 수면에 떠오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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