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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Oct 25. 2016

'립반윙클의 신부'를 보고

위태한 현실세계와 가면을 쓴 사람들

 팬이 되면 대상이 되는 사람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보다는 그 사람의 활동 자체에 감사하게 된다. 이와이 슈운지가 오래간만에 영화를 냈다는 사실만이 나를 흥분케 했다.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도 있었지만, 그건 원래 있던 이야기의 프리퀄인 데다가 애니메이션이었으므로 내가 바라는 이와이 슈운지의 신작의 냄새는 덜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정말 팬심으로 영화를 찾아봤다.


 나는 이와이 슈운지를 정말 좋아한다. 이 영화 전까지 여섯 편의 영화를 봤는데, 그 모두가 좋다. 나를 매년 오타루로 이끄는 러브레터부터, 4월 이야기,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릴리슈슈의 모든 것, 하나와 앨리스 모두 좋다. 피크닉과 언두 역시 보고 싶다. 그가 보여주는 순수의 세계와 미성숙의 이야기들이 모두 좋다.


 이 영화에서는 온전하지 못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회적인 무언가, 자존감이나 관계성 같은 것들이 결여된 인물인 이 여자는 이야기 내내 수동적으로 극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영화 초반에는 극 중 이 여자를 이용하는 인물이 표현한 것처럼 이 영화가 무언가 결여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재난극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초점은 여자가 재난과 같은 경험 속에서 추락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이 어떻게 그것들을 딛고 일어나는가에 맞춰져 있다.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만큼 이 영화 속의 세계 역시 낯설다. 극이 다루고자 하는 세계는 지극히 우리가 속한 지금의 현실세계임에도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다. 사실 일본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사회적 질병들이 극 속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가장 주된 문제인 SNS와 현실세계의 기묘한 공존, 히키코모리, 가정의 해체, 중혼, 관계의 가벼움, AV에 대한 이야기까지, 영화는 극에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이슈들을 주인공 여성 한 명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조금씩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 아니다. 카메라가 영화 내내 주인공 여성의 곁을 가까이 지키며 그녀의 표정과 인상을 보여주듯이, 영화의 궁극적인 주제는 이 여성을 통해 드러난다. 이와이 슈운지 특유의 심도가 얕은 카메라가 날리는 먼지마저 포착하는 자연광 속에서 부유할 때 나는 이 영화의 감독이 이와이 슈운지였지 하고 다시 생각했다. 


 두 개의 세계가 위태하게 겹쳐져있는 현실세계의 모습에 이름을 바꿔가며 가면을 쓰는 인물들이 무슨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극 중 연기하는 인물들이 주연이 되고, 연기하는 상황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결국 거짓과 비거짓이 중첩되어 있는 세상에서 위기를 겪고 진심을 만난 위태한 여성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거짓과 자신에게 내재된 결여를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 모든 가면과 껍질을 벗겨내고 울고 마시고 웃고 소리 지르는 후반부의 장면은 그런 점에서 인상 깊었다. 물론 주인공들이 사랑을 고백하고 마주 보며 누워있는 장면은 참 아름다웠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와이 슈운지의 작업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은 좀 남는다. 그 답지 않게 담백하지 못했고, 의아한 설정들이 자주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등장인물들에게 그렇게까지 긍정할 수 없다는 점들이 위화감을 줬다. 나는 그의 팬이니까 또 그의 작업을 기다릴 테지만 다음 결과는 더 그다웠으면 좋겠다. 나는 참 못된 팬이다.



+ 포스터만 보고 나는 진짜 아오이 유우가 주인공인 줄로만 알았다. 세상에 아니었다니. 하지만 쿠로키 하루 역시 좋았다.

++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남자 배우부터 두 명의 여자 주인공까지 아주 좋은 연기를 펼친다. 종종 어디서 본 배우들이 카메오로 나온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이겠지?

+++ 아참 난 3시간짜리 확장판을 봤다. 왓챠를 보니 원래 2시간이라던데, 어떤 장면을 뺀 거지 도대체?

++++ 찾아보니 이와이 슈운지가 직접 쓴 소설이 원작이라고?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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