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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23. 2015

내 인생에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단어들

150530(3) : 캄보디아 프놈펜, 밤거리와 레이지겟코

 캄보디아 국경을 넘은 직후 보았던 풍경은, 오로지  카지노뿐이었다. 국경을 넘은 버스가 달리는 동안 어두운 밤거리의 좌우에는 내내 휘황찬란한 카지노들이 불을 밝혔다. 어째서 국경 근처에 이런 카지노들이 밀집하게 되었을까? 국경이라는 단어 자체도 내게는 환상같이 느껴지지만, 카지노 역시 그렇다. 내 인생에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단어들. 그런 단어들이 형형 색색으로 빛나며 현실화되어 내 주변을 거쳐가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카지노들이 모두 지나간 뒤에야 캄보디아의 풍경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을 밝힌 야시장에는 훈제된 돼지와 조류들을 매단 노점들이 잇달아 지나갔고, 술과 음식을 먹는 캄보디아의 청춘들이 그 주변에 앉아있었다. 때때로 마주치는 주거지역은 베트남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어서 아직 캄보디아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되지 않았다. 우린 그렇게 세 시간 가량을 더 달려 프놈펜에 도착했다. 


 프놈펜에 도착하자마자 폰을 열고 책에 있는 지도를 펼쳐 원하는 구역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동남쪽의 강 주변 구역이었다. 도시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그 도시에 대해 알 수 없다. 내가 아무리 도면을 끼고 살고 지도를 보며 여행을 다녔다고 할지라도, 평면 위에 표시된 기호들과 선들은 그 도시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는 것이 하노이, 후에, 호찌민, 프놈펜을 거치며 얻게 된 내 지론이다. 


 아무튼 낯설고 어둡고 조용한 도시를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계속 걸었다. 지도 위에 표시된 우리의 현 위치가 원하는 목적지의 좌표 위에 겹쳐질 때 까지. 아디다스, 샤넬 같은 브랜드의 상점들이 불이 꺼진 채로 우리 옆을 지나가다가 곧 넓고 긴 광장이 나왔다. 세종로처럼 길고 넓은 도로를 중앙에서 분할하는 광장이었다. 광장의 절점들에는 캄보디아식 탑과 파빌리온이 야간조명을 받으며 서 있었다. 광장을 따라 걷는데 한 건물의 담벼락 게시판에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 동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등의 문구와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엥? 하고 살펴보니 주 캄보디아 북한 대사관이었다. 북한과 수교하는 나라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캄보디아가 조금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왠지 나는 참 좁은 나라에서 태어났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광장을 모두 지나고 왼쪽으로 꺾으니 거대한 캄보디아식 전통 건축물이 줄지어 있다가 한 골목으로 진입하고 나서야 게스트하우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이지겟코는 15달러를 불렀고, 오케이는 13달러를 불렀다. 에어컨이 있는 투 싱글베드 룸이었다. 오케이, 오케이! 우린 방에 들어가 만족하며 짐을 내려놓고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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