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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6. 2015

문묘와 성요셉대성당에 가기로 했다

150520 : 베트남 하노이, 문묘

 전날 널어놓은 빨래 덕분에 더욱 습해진 아침, 득의 재촉으로 일어나 게스트하우스 로비 뒤편에 위치한 식당에서 조식을 먹었다. 간단한 과일과 음료들, 요거트와 우유, 튀긴 빵, 버터와 치즈 등이 샐러드바처럼 꾸려져 있고 메인 메뉴는 웨이터에게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베이컨과 달걀프라이를 시켰고 득은 치즈 달걀 오믈렛을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들이 기본 바게트 빵과 함께 나오고 우리는 준비된 음료와 과일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몇 명의 다른 투숙객들이 함께 아침을 먹는 모습이 정겨웠다. 


 다시 숙소로 올라와 게으름을 피우다 정해진 목적지인 문묘와 성요셉대성당에 가기로 했다. 다시 후덥한 하노이의 거리 위로 우리 몸을 내밀 차례였다. 

 덥고 습한데다 교통체증과 소음과 먼지로 가득한 거리의 모습은 어제와 다를 것이 없었다. 길을 나서자마자 덮쳐오는 견디기 힘든 끈적한 공기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스케치를 위해 허리에 쌕을 메고 론리플래닛과 스케치북과 펜을 넣었다. 이제는 론리플래닛을 펼치지 않고서도 종종 핸드폰의 시티맵투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숙소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호안끼엠호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간 뒤 그대로 호를 끼고 돌아 서쪽으로 직진하면 문묘가 나올터였다. 


 예상한 것과 별 다르지 않은 길을 따라  4키로가량을 걸어 어렵지 않게 문묘를 찾을 수 있었다. (중간에 KFC에 들러 간단한 버거와 콜라로 배를 채웠다) 문묘는 장방형의 대지에 남향하고 서 있었으며, 남북방향의 축을 토대로 각 영역과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어 서울의 성균관을 연상케 했다. 입장료는 3만 동으로, 둘이 합쳐 한국 돈으로 3천 원가량이었다. 

 남쪽의 세 칸 문을 통해 들어가니 넓은 영역 안에 동서로 방형의 연지가 있었다. 그 앞의 문을 지나도 마찬가지였으며, 그 다음 문을 지나자 동서로 서로 마주 본 장방형의 맞배집이 연지 대신 위치해있었다. 건물은 전면을 벽체 없이 비워두었으며, 내부에는 비석들이 가득했는데, 그것은 이 문묘에서 배출해낸 학생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영역을 넘어가는 문은 겹지붕으로 된 누각형식의 건물이었는데, 대성전과 같은 기능의 영역으로 안내하는 전이공간이었다. 다음 영역에서는 전면에 남향한 큰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 있었다. 그 정면 아홉 칸의 건물은 남쪽의 벽체를 비우고 내부에 공자와 다른 남자 넷의 상을 모셔놓고 배향하고 있었다. 해당 건물의 전면 좌우에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본 맞배집에 두 채 있었고, 두 채 모두 기념품샵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건물들의 구조는 매우 단순했다. 기둥 위에는 창방 없이 주두를 놓고 도리로 이었으며 내진주는 고주로 하여 그 끝에 보들을 연차적으로 얹어 수 많은 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도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다수 걸쳐져 있어 천두식인가 하였으나 구조의 기본은 대량식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특이한 것은 내진주에서 외진주로 연결하는 하앙과 같은 부재였는데, 이 두꺼운 부재가 서까래와 같은 각도로 길게 출목하여 외진주 밖에 설치된 도리들을 받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크게 발달하지 않은 구조법으로 생각되었으나 해당 건물군의 건축연대가 11세기임을 감안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대성전 같은 영역의 남쪽 벤치에 앉아 스케치를 하고 있으려니 득이 매우 더워하고 약간 지루해했다. 나도 펜들이 고장 나 연필로 그리려니 힘이 빠지던 차였다. 대충 그림을 마무리하고(엉망이었다) 일어나 다시 동쪽으로 걸어 성요셉성당을 가기로 했다. 

 지금은 성요셉성당에 가며 지친 몸을 잠시 식히고자 barista frank coffee-bar에 와서 민트소다와 망고주스를 시켜놓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약 사만 동 정도의 음료. 


조식에도 정성이..
하노이 문묘의 대성전, 좌우로 넓은 팔작집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향교나 서울문묘에서는 이런 공자상을 볼 수 없다(보통은 위패와 영정 정도)
대성전 좌우의 기념품 가계에서 팔던 귀여운 탈, 친구를 닮았다
알 수 없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어떤 의미일까?
구름이 널어놓은 솜처럼
문묘의 입구는 이렇게 석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크림소다, 맛없어
오?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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