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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6. 2016

검빛의 하늘이 흑청 빛으로 고요해질 때

150605 :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왓

 네시에 알람을 맞춰놨지만 우리 둘 모두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 내가 의지로 일어난 시각이 5시가 못된 시간이었다. 아직 창 밖은 검빛으로 어두웠다. 일단은 안심했다. 


 어쩌면 생에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일일 수도 있었다. 사실 일출을 본다는 사건 자체가, 한 사람의 일생에서 그리 많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잠을 사랑하는 나 같은 사람의 경우에는 더.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 개인적인 일이나 학업적인 일들로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았으니, 그나마 나는 해가 뜨는 모습을 많이 보긴 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뜨는 해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어느새 창 밖을 보니 해가 떠있는 것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일출이란 고등학생 시절,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운해 위로 떠오르는 해를 본 기억이 거의 전부다. 다른 학우들과 함께 등반한 지리산이었지만 그때 새벽에 일어나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올라가는 일은 선택이었다. 선생님들은 의지가 있는 학생들만을 추려 새벽 일찍 산행을 나섰다. 나는 그중 하나였고, 3대가 산을 올라도 보기 힘들다는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운해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니, 꽃나무라는 단어를 처음 몸으로 느꼈듯이, 운해라는 단어를 처음 느꼈다. 구름으로 덮인 발아래에 종종 높은 봉우리들은 천왕봉을 섬기듯 낮게 솟아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붉은 해가 낮게 떠올랐다.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환희를 겪었다. 그게 거의 내게 유일한 일출의 기억이다. 나는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그 유명한 정동진에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므로. 


 이젠 그곳에서 비행기로 5시간을 날아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에서 일출을 보려 한다. 어제 지평선 너머로 넘어간 해가 지구 반대편을 돌아 다시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검빛의 하늘이 흑청 빛으로 고요해질 때, 우린 준비를 마치고 자전거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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