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래 Sep 16. 2016

친구들에게 한 장 한 장, 마음을 적어 보내기를

150605(5) :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유적

 발을 굴려 나아가니 어딘가에 도착했다. 탑 다섯 개가 나란히 서있는 유적이었는데, 중앙의 한기 외에는 모두 상층부가 상실되어있었다. 그렇게 인상적인 유적은 아니었지만 내부에 양각된 보살과 부처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탑의 양식도 지금까지 본 것들과는 달라 독특했다. 보통 탑의 사면에 두른 문비의 상부에는 양각된 불꽃무늬의 장식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음각으로 표현했다. 탑들의 모서리 면들이 반듯하게 살아있는 것도 보기 좋았다. 낮은 태양빛을 받은 탑들은 노랗게 빛났다.  


 자전거를 세운 곳부터 두 여자아이가 졸졸 따라다녔다. 손에는 엽서 열 장을 쥐고 있었다.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어디서 배웠는지 콩만 한 손으로 엽서를 한 장 한 장 영어로 세어 보이며, ‘선생님, 이 엽서 열 장에 1달러예요, 부디 사주세요’ 하며 쫓아다녔다. 마음이 좀 아팠지만 이 아이들이 커서도 이런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런 장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고는 유적들을 둘러봤다. 


 다시 출발하기 위해 자전거 근처로 오니 그 두 여자아이가 다시 쫓아왔다. 한 아이는 피리까지 들고 와 피리를 불었다. 아, 미안하구나 아이들아, 하지만 너희에게 이 엽서를 사면 너희는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여기서 엽서를 팔겠지, 하고 생각하며 길을 달리려 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 학교 갈 돈이 없어요, 도와주세요’라고. 


 나는 멈춰 서서 그 엽서들을 샀다. 엽서를 사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국말로 ‘공부 열심히 하렴’ 하고 말했다. 아이는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기다리던 득을 따라 다시 자전거를 달리는데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며, 특히나 이런 일에 있어선 무엇보다 내게 여유가 없다. 고작 엽서나 사줄 뿐. 


 아직도 이 엽서는 내 가방에 있다. 친구들에게 한 장 한 장, 마음을 적어 보내기를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가 떴으니, 다시 달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