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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6. 2016

전쟁영웅들입니다, 도와주세요

150605(6) : 캄보디아 씨엠립, 반티 크데이

 타 쁘롬 유적지에 가는 동안 하나의 유적지를 더 거쳐갔다. 반티 크데이라는 12세기쯤 건설된 유적이었는데, 음, 그렇게 특징적인 것은 별로 없는 유적이었다. 


 정문에는 앙코르 툼과 바욘 사원에서 본 것과 같은 사면상이 세워져 있었고, 일직선의 축을 따라 놓인 건물들은 회랑을 거쳐 중심부의 중앙 건물까지 이어졌다. 중앙 건물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고, 때때로 담벼락이나 회랑 같은 건물들에 큰 나무들이 자라나 뿌리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여기저기 무너지려 하는 곳들이 많아 철봉으로 지지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 유적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유적의 모습보다는 입구 근처에 있었던 아저씨들이었다.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아저씨들은 저마다 악기를 하나씩 가지고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한국 악기에 비유하자면 가야금과 아쟁과 같은 현악기들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그 아저씨들은 모두 신체의 일부가 손실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한쪽 발의 정강이 아래가 없었고, 누군가는 손목이, 누군가는 양쪽 발이 모두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모두 무언가가 결손 된 채로 사람들이 지나가면 묵묵히 연주했다. 그들이 앉은 평상에는 ‘’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이곳이 베트남이었다면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약간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그들을 보고 생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독립유공자들, 그리고 전쟁영웅들이었다. 종종 뉴스를 보면 우리나라의 그분들 역시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 캄보디아에서도 마찬가지인가.


 지뢰나 포격 등으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청년들이 악기를 배우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다리나 손이 몇 없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없었을 테고, 그중에 그들이 선택한 것이 음악이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젖게 만들었다. 가장 부상이 심해 양손이 없는 아저씨는 손에 캐스터네츠를 묶어놓고 그것을 박자에 맞춰 치고 있었다. 문득 그 아저씨들의 인생 이야기가 듣고 싶어 졌다. 


 세상은 이렇게나 잔인하고, 동시에 그들의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기도 한다. 그들의 음악은 투박했지만 소소하게 아름다웠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무는 높아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 줬다. 


 우리가 지나갈 때는 적당히 연주하던 그들이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지나가자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린 조금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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