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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6. 2016

'아노말리사'를 보고 (술마심)

모든 사랑의 시작과 종말

1. 거기에 키스해도 될까요?


 세상 모든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거기에 키스해도 괜찮냐는 물음부터.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거기에 키스할 수 없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의 흉터에, 당신의 슬픔에, 당신이 겪은 그 기이한 일들에 대해, 혹은 당신의 난도질당한 그 마음에, 그러니까 당신이라는 사람 그 자체에. 

 리사를 만나기 전까지 시종일관 예민하고, 시니컬하고, 피곤해 보였던 스톤은 객실 화장실에서 의문의 목소리를 듣고는 급하게 방에서 뛰쳐나온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주변 방문을 두드리던 스톤은, 결국 엠마 뒤에 숨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 리사를 만난다. 

 리사는 특별하다. 영화 내내 스톤 외의 모든 사람들은 같은 얼굴에 같은 목소리를 하고 있다. 심지어 스톤이 보고 싶어 했던 그리운 옛 연인마저도, 전화통화를 통해 그녀임을 못 알아챌 정도로 모두의 목소리는 똑같고, 얼굴마저 같다. 하지만 리사는 그렇지 않다. 리사의 목소리는 다르고, 그녀의 얼굴 역시 다르다. 그 특별함을 한눈에 알아본 스톤이 그녀를 방으로 픽업해 간 뒤, 그녀 얼굴의 흉터를 보며 이야기한다. '거기에 키스해도 될까요?


 물론 리사는 거부한다. 쳐다보지 말라고, 닥치고 있을게요,라고. 내내 리사는 자신의 모습에 부정적인 듯 보이지만, '거기에 키스해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남자에게 결국 자신을 보여준다. 모든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내어 보여주는 것부터, 그리고 그것에 키스할 용의가 있는 것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이야기해도 된다. 그곳에 키스하는 것만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의 모든 것이라고. 그러니 '그곳에 키스해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이성에게 사랑을 느끼지 않을 방법은 없다. 결국 리사는 그곳도 내어주고, 간지럼을 타고 부끄럼을 느끼는 다른 '그곳'도 내어준다. 왜냐하면, 그는 내게 당신이 특별하다고 말해줬으니까. 스스로 노말 하다고 말하는 리사에게, 스톤은 '아노말리사' 라고 말해줬으니까.



2. 제발 입 속에 넣은 음식물 좀 먹고 말해줄 수 없어?


 영화의 모든 은유는 제쳐두고서라도, 이 영화는 질문 형식의 두 대사로 이해할 수 있다. '거기에 키스해도 될까요'와 '제발 입 속에 넣은 음식물 좀 먹고 말해줄 수 없어'다. 거기에 키스해도 되냐는 질문이 사랑의 시작이라면, '제발 입 속에 넣은 음식물 좀 먹고 말해줄 수 없어?'라는 대사는 사랑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대사다. 결국 동화 같은 이야기이기에, 관객의 입장에선 이렇게 순식간에?라고 느낄 수도 있는 지점이지만 스톤의 캐릭터를 이해한다면 넘어갈 수 있다. 

 하룻밤만에 세상에 하나뿐이었던 그녀가 평범한 그들 중 하나가 되었을 때에, 스톤에게 세상은 개벽한 듯 섬뜩했으리라. 그 과정을 찰리 카우프만은 아침식사 와중의 사소한 트집으로 설명한다. 우리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프롬식의 사랑이 아닌 이상, 모든 사랑은 병리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호르몬에 의한 어떤 상태를 의미한다. 그 유효기간은 보통 2년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하룻밤 새에 쉬 쉬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포크로 이 부딪히는 소리 좀 내지 마' 라던지, '제발 입 속에 넣은 음식물 좀 먹고 말해줄 수 없어?'라고 말할 때 그녀는 더 이상 내가 사랑한 '아노말리사'가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 역시 사라진다.



3. '제게 뭔가 확실히 잘못됐어요'


 영화의 최종장은 스톤의 연설에서 시작한다. 묵시록을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의 끝은 옵니다, 그러니 항상 웃으세요'라고 말하는 스톤은 혼란스러워 보인다. 또 한 번 사랑의 끝을 마주한 그가 말할 대사라고 하기에는 이상해 보인다. 그는 그제야, 졸로푸트라는 항우울증 정신약을 거론하며 자신의 흉터가 그곳에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그곳에서 말한다. '제게 뭔가 확실히 잘못됐어요'라고. 연설이 유야무야 되고, 집으로 돌아온 그를 맞는 것은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목소리를 한 아내와 아들이며, 서프라이즈!라고 외치는 낯익음에도 낯선 사람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에게 외면받은 선물인 일본 인형이 홀로 노래를 부르며 삐걱여대는 장면은 그의 외로움을 온전히 대변한다. 그의 집에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그들은 차라리 스톤에게 없는 이들과 같다. 괴상한 모습으로 외면당하는 일본 인형은 스톤이나 리사와 같다. 스톤은 그를 빤히 응시하고, 그 위에 리사의 편지가 얹힌다. '당신이 떠난 것을 이해해요. 당신과 같은 사랑은 처음이었어요'라고 말하는 편지가.


 차라리 이렇게 기억될 수 있기에 사랑이 유의미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내게는 병리적 현상이었어도, 당신이 호르몬에 의한 흥분 그 이상이 아니었더라도, 그 흔적이 당신에게 '당신과 같은 사랑은 처음이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아노말리사가 일본어로 '천국의 여신'이라는 뜻이란다. 물론,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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