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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6. 2016

'태풍이 지나가고'를 보고

니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어른이 될 것 같아?

1. 비루한 삶


 아마 이번 시즌 내 일상의 테마를 정하자면, 혹은 SNS처럼 태그를 달자면 '비루한 일상'이 아닐까. 남들은 SNS에 멋진 일상, 맛있는 음식 올리기 바쁜데 나는 마냥 비루한 일상만 올릴 수 없으니 SNS 자체를 거의 안 하지만, 블로그에만은 종종 나의 비루함을 올린다. 일상 상자를 아무리 뒤져봐도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멋진 장면은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물론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내 인생의 한 시점으로 어떻게 미화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내가 살아가는 환경은 그렇다. 매우 덥고, 아주 외롭고, 무척이나 한가롭고, 아무 데도 쓸 곳이 없는 그런 일상들이다. 아마 내년쯤 되면 이런 일상도 깨지겠지, 싶지만 아직까진 게으름을 피우고자 한다. 내가 선택한 게으름이니 딱히 스트레스받을 곳은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2. '인생이란'이란


 영화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인생'이고, 많이 등장하는 어구가 '인생이란'이라는 것은 꽤나 직설적으로 영화의 주제를 드러낸다. 유치원 때부터 조부를 따라 복권을 사러 다녔던 료타는 장성한 뒤에도 경륜에 빠져 갬블을 일삼는 성년이 되었다. 변변찮은 소설을 써서 변변찮은 문학상을 한 번 손에 쥔 것 외엔 내세울 것도 없는 이혼남 료타에게 다만 자랑할만한 소중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들 싱고. 그러나 아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전 부인에게 양육비를 넘겨줄 때뿐이다. 료타는 그 날을 기다리며 소설은 쓰는 둥 마는 둥, 말로는 소설 취재를 위해 하는 부업이라고 주장하는 탐정 일로 돈을 모은다. 야구하는 아들에게 새 글러브를 사주기 위해, 멋진 운동화를 사주기 위해. 


 영화 내내 료타는 시종일관 한심하다. 양육비로 줄 돈이 모자라 남편을 여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노모를 찾아가 의뭉을 떨며 어수선대고, 누나의 일터에 찾아가 돈 얘기를 한다. 그들은 '너 지금 니가 싫어하던 아버지랑 똑같은 거 알아?' 라며 일침을 놓지만, 료타는 머쓱함과 짜증이 뒤섞인 표정으로 대꾸할 뿐이다. 


 그런 와중에 인생을 주어로 한 문장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주인공이고 조연이고 할 것 없이 마치 '인생이란'이란 주제의 백일장이 열린 것마냥 등장하는 인물들마다 인생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 던진다. 료타의 어머니도, 료타의 상사도, 료타의 부하직원도, 료타의 의뢰인도, 누구나 인생에 대해 아는 듯 말들이 많다. (이것이 약간 과하다고 느껴지는 찰나, 감독은 '그치 좀 과하지?'라는 듯 료타의 어머니의 입을 빌어 '어머 나 지금 좀 멋있는 말 하지 않았니?'라고 너스레를 떤다) 나는 그 수많은 인생 문장들 중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하나는 료타의 부하직원이 말한 '인생은 알 수 없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료타 자신이 뱉은 '니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어른이 될 것 같아?' 첫 번째 문장은 (내 생각에) 보편 진리이고, 두 번째 문장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공감이 갔다. 



3. 내가 최근 생각하는 것들


 백남준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비디오테이프로 모든 것을 녹화하고 보존하면서 우리는 신의 절반을 모방했다.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 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삶을 되감기 할 수는 없다.
비디오테이프 녹화기에 '빨리 감기' '되감기' '정지' 버튼이 있지만, 우리의 삶에는 '시작' 버튼 하나뿐이다.
만일 내가 47세에 뉴욕에서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살리라는 것을 25세 때 알았더라면 계획을 다르게 세웠을 것이다.
삶에는 '빨리 감기'나 '되감기'가 없기에 앞날을 전혀 예견할 수 없다. 그러니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기에 불안하다. 나는 47세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영화의 꼬맹이처럼 '그런 어른은 되지 않을 거야'라는 인간상은 있다. 아이러니하게 그런 인간상은 대체로 주변에서 관찰 가능한, 그러니까 내 주변의 가까운 지인의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나는 혼란스럽다. 내가 될 만한 가능성의 무엇과 되지 않고 싶은 기피의 무엇이 중첩될 때의 괴로움이다. 그럴 때 나는 선택을 미룬다. 그래서 내 삶이 지금 비루한 것일지도. 도대체 나는 무엇이 될까? 이 간단한 질문을 지난 십몇 년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런 질문들에 항상 답은 없었다. 


 이 영화의 타임라인에서 보자면, 지금 내 상황은 폭풍이 몰아치기 전, 티브이에서 예보가 흘러나오는 오프닝 시퀀스로부터 한 20분쯤 지나지 않았을까. 너무 후하게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내게도 곧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예감은 있다. 그런 예감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하지만, 이 못난 어른 료타가 짜증 속에 내뱉은 간단한 한마디가 위로가 된다. 나는 내가 원하는 그런 어른이 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알 수 없다. 그러니 백남준 선생의 말대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수밖에. 



4. 영화에서만 표현 가능한 것


 가장 마음에 든 장면은 단연 마지막 장면이다. 플롯이 극적이지 않은 이상, 변화하는 것은 사건관계가 아닌 인물 내면이다. 이런 이야기는 분명 시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분명 영화의 시작과 끝에 무언가는 변한다. 그것은 대체로 주인공의 내면이다. 주인공 료타는 어떻게 변했는가?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러한 영화의 책임이다. 의도적으로 몇 장면을 삽입하여 주인공의 달라진 내면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사실 료타는 그렇게 극적인 변화가 있진 않다. 태풍이 몰아치는 밤, 그의 얼굴을 크게 잡은 장면은 그의 변화를 암시하지만 그 뒤에 그는 곧 아버지의 다른 유품을 들고 전당포로 향한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 걸까. 그는 여전히 철없는, 영화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이미지화 한 '남자'일뿐인가. 그런 질문 속에 료타는 가만히 앉아 아버지의 옷을 입고 아버지의 유품으로 무언가를 한다. 카메라는 그의 옆모습을 바스트 샷으로 보여준다. 료타는 심호흡을 한 뒤, 구부정한 허리를 곧게 세운다. 카메라는 이동하지 않으므로, 료타의 머리는 화면 밖으로 벗어난다.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나는 이런 연출이 대단히 마음에 들어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리리 프랑키가 누군가 하고 영화가 끝난 뒤 찾아봤더니 고레에다 영화에 항상 등장하는 흥신소 사장 역의 배우였다. 

++ 영화의 모든 캐릭터 중 료타의 어머니가 가장 인상 깊다.

+++ 영화 중간에 휘파람으로 등장하고, 마지막에 엔딩곡으로 쓰인 하나레구미의 '심호흡'은 내가 얼마 전 우연히 듣고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 영화의 OST인 줄도 몰랐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 뭔가 스토리가 있길래 그냥 뮤직비디오거니 했었는데 이 영화의 장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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