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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8. 2016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밤’

150606(5) : 라오스 시판돈, 파오네 게스트하우스

 해먹에 누워 한참을 흔들거리다가 파오네 식당에 가 저녁을 먹으며 비어라오를 마셨다. 평화로운 날이었다. 곧 비가 다시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손님이 아무도 없기에 내가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도 되겠냐고 묻자 파오는 아무렴, 이라고 말하며 가게 스피커를 내어 주었다. 우리는 오래도록 세르지오 멘데즈나 스탄겟츠의 음악들을 들었다. 양철 지붕에 비 떨어지는 소리와 음악과 풍경이 잘 어울렸다. 


 곧 어둠이 깔려 레스토랑의 불빛들마다 벌레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한번 꼬여진 벌레들은 저마다 더 가까이 불빛에 다가가겠다는 듯, 침묵의 혈투를 저들끼리 벌였다. 더러는 뒤처진 날벌레들이 우리의 팔뚝과 머리에 툭툭 떨어졌다. 우린 이제 그만 방으로 가기로 했다. 


 방 문 앞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수 백 마리는 될 듯한 벌레들이 앞다투어 불빛의 반뼘을 차지하기 위해 날아들고 있었다. 우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하지만 방 안의 불빛에도 벌레들이 끌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방 바깥의 벌레들이 방갈로의 널빤지 벽 틈새 사이로 들어와 방 안의 조명에 들러붙었다.


 우리는 모기장을 쳐고 침대에 누웠다. 나는 잠시 모기장에서 나가 몸을 씻었다. 다시 들어와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잠이 마침 쏟아져 꺼뻑 잠이 들려는 무렵에, 갑자기 득이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 보니 발 밑에 개어져 있던 담요를 가져오려던 득의 손에 바퀴벌레가 올라탔고, 담요 속에도 잠자던 바퀴 한 마리가 서둘러 도망갔다는 것이었다. 득은 기겁을 하며 손을 떨었다. 내게 사정을 설명하며 계속해서 끔찍해했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소릴 질렀다. 


 나는 속으로 뭐 그럴 만도 하지,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곳에서 청결한 위생상태라던지, 이런 걸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시 누워 잠을 청하려 했지만, 득은 그러지 못했다. 모기장을 다시 철저히 점검하고 빈틈을 살핀 뒤에도 불안하여 누인 자리에서 종종 벌떡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나는 잠에 들려고 하였으나 득의 부산거림에 잠들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득이 다시 이유모를 섬뜩함을 느껴 자신의 베개를 들추자 다른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 뒤에 숨어있다가 도망가는 모습이 발견됐다. 득은 다시 기겁했다. 이곳에서 더 이상 잘 수 없다고 선언한 득은 내가 모기장 안에서 텐트를 치고 자는 것을 제안할 때까지 불안해했다. 


 결국 우리는 방갈로의 침대 위 모기장 안에서 텐트를 치고 잠이 들었다. 텐트 안에 담요를 깔고, 텐트의 지퍼를 모두 꼭꼭 잠근 뒤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숙소를 옮겼다. 득은 그날 밤을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밤’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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